당신은 거기에, 나는 여기에

by 브니엘

"제가 왜 그러냐면요..."

직장에서 답답하고 속상한 부분을 상사에게 이야기하다, 입을 닫았다. 별로 듣고 싶지 않다는 상사의 표정을 보았기 때문이다.

'듣고 싶지 않았으면 왜 나에게 밥은 먹자고 하고 무엇이 힘든지는 왜 물어봤지...?'

당황한 나는 무슨 얘기를 해야 할지 주제를 찾을 수 없었고 그냥 고개를 처박고 밥을 욱여넣었다.

그렇게 밥알이 입으로 들어가는지 코로 들어가는지 모를 어색하고 불편한 식사시간이 끝나고 사무실로 돌아와 더 어색하게 각자 자리에 앉았다.

원래 마음이 상했던 부분보다, 오늘의 이 대화가 내게는 더 상처였다. 듣고 싶지 않았다면 대체 왜 물어봤을까? 게다가 몇 마디 꺼냈던 말에 대한 반응으로 상사의 입에서 나왔던 말. 내 이야기가 제대로 전달되지 않았으며 자기 마음대로 해석하고 이해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거기에 그 듣기 싫다면 표정까지 보이니 다시 말해야겠다는 의지조차 꺾였다. 그러니까 이것은 하지 아니함만 못한 대화였다. 서로의 입장을 이해하고 좁히기는커녕 각자 자기 식으로 오해할 만한 말만 몇 마디 나눈 셈이니까.


그런데... 좀 이상했다. 업무라는 환경에서 직장상사라는 사람에게 느끼는 나의 감정은 단순히 불합리함, 분노 이런 것뿐 아니라 서운함, 상처받음, 미움 뭐 이런.... 상당히 사적인 감정의 쪼가리들이 붙이 있었다. 목구멍까지 차오르는 가슴 쓰림을 누르면서 나 스스로에게 물었다.

'대체 뭐가 속상한 거야???'




"넌 지금껏 그걸 몰랐단 말이야?"

퇴근 후 이전 직장 동료였던 나의 친한 친구와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다 보니 내가 무슨 착각을 하고 있었는지 제법 또렷하게 정리가 되기 시작했다.

나는 사실 그동안 나의 상사와 나름 가깝고 친밀하게 지낸 편이었다. 아니, 적어도 내 생각엔 그랬다. 같이 농담도 나누고 웃기도 하고, 일이 아닌 어떤 부분을 챙겨주기도 하는 이런 시간들이 직장 상사와 부하직원이라는 단편적인 관계를 넘어서 인간 대 인간 사이의 그 무엇을 쌓고 있는 것이라 생각했었다. 관계가 쌓이고 가까워졌다고 생각한 만큼, 이런저런 이야기들을 때로는 그저 들어줄 수도 있는 언니 같은 역할도 해줄 것이라 나도 모르게 기대했던 모양이다. 내가 때로 집안일에 직장일에 치이는 그를 보며 지금 힘들겠다 라는 생각이 들 때 뒤에서 도우려 애썼던 것처럼.


그러나 그 시간이 나의 상사에게 갖는 의미는 달랐었던 듯하다. 그는 나와의 사이에서 "상사"라는 위치를 조금도 벗어날 생각이 없었다. 상사와 부하직원이라는 관계 이상을 위해서가 아니라, 그 자리에서 상사로서 더 잘 기능하기 위해 그는 나와 사적인 시간들을 가졌던 것이다. 괜찮은 상사가 되고 조직을 더 잘 리드하기 위해서. 가만히 생각해보니, 내가 왜 이제까지 이걸 몰랐을까 싶을 만큼, 그의 입장에선 너무 당연한 일이었다.

같은 행동을 하지만 우리는 심리적 위치가 너무 달랐다. 그렇기에 기대하는 바도 달랐다. 나는 때로 나의 상사에게 서운함을 느꼈고, 아마 그는 내가 선을 넘는다고 느꼈을지도 모르겠다.


사람들은 말한다. 직장에서 만난 사람은 그냥 직장 사람일 뿐이라고. 하지만 나는 내내 외쳐왔다. 직장도 사람이 모인 곳이고, 어디에서나 친밀하고 깊은 인간관계를 맺는 것은 가능하다고. 그동안 떠들던 나의 입술이 부끄러워지는 순간이었다. 가능하기야 하지. 아닌 것은 아니었다. 그러나 적어도, 양쪽 모두 그것을 원할 때만 가능한 일이다. 그런데 누군가에게는 그 환경에서 본인에게 주어진 위치란 절대 포기할 수 없는 어떤 것일 수도 있었다. 나는 왜 모두가 그 선을 넘는 인간관계를 원한다고 생각했었을까? 그는 상사의 자리를 언제든 존중받고 싶고, 나는 "상사"인 사람과 굳이 필요 이상으로 가까워질 생각이 없었다.


정말 상대를 존중한다면, 상대가 원하는 위치 이상을 함부로 다가서면 안 되는 거겠지. 정말 나의 의도가 선의였다면, 나는 내 상사가 원하는 위치 어디쯤으로 물러서야 하는 것이었다. 주제넘었던 나의 생각과 행동들이 떠오르며 씁쓸한 미소가 지어졌다. 주제넘었다 라는 단어 말고는 딱히 떠오르는 표현이 없었다. 그동안 그저 상사이기만 하다고 생각했다면 그렇게까지 하지 않았을 나의 행동들이 생각나면서 억울함과 배신감이 몰려왔지만... 그가 그은 선 뒤로 물러나기로 했다.


아니 그런데 말이야. 내내 상사이기를 원했다면 말이야. 직장에서 왜 이름을 부르고 반말을 하면서 친한 척이지? 본인이 넘고 싶을 때는 넘어도 되는 선이었어? 쳇!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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