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의 최선과 나의 최선은 다른 거니까

by 브니엘

상사로서 그의 결정에 서운함을 느끼면서도 나는 안다. 내 맘에 드는 선택이 리더인 그의 입장에선 가장 합리적이고 산뜻한 선택이 되지 못할 때도 많다는 것을. 회사의 처사가 부당하다며 리더에게 분을 표할 때도 모르는 것은 아니다. 위로 아래로 눈치 볼 사람을 잔뜩 지닌 그의 위치, 그 자리의 고단함을 한편으로는 이해한다. 어쩌면 내가 느끼는 모든 감정을 배나 느끼면서도 단단하게 그 자리에 버티고 서 있어야 하는 사람.


게다가 그는 미혼인 나와는 다르게 엄마라는, 며느리라는 짐을 양 어깨에 지고 날마다 고군분투한다. 가끔 힘을 잃은 그의 뒷모습을 볼 때면 가서 그 어깨에 얹어진 짐을 툭툭 털어주고 싶은 생각이 들기도 한다.

그래. 그는 적이 아니라 나처럼 자기 자리에서 고군분투하는 한 삶일 뿐이지. 그의 선택과 행동이 때로 나와 부딪히는 것일지라도, 그도 자신의 최선을 찾아 애쓰고 있지.




그에게 배신감을 느낀다며 욱욱대는 순간들이 있지만 우리 관계가 내내 그것이 다는 아니었다. 아니 어쩌면 배신감이라는 단어를 사용하는 것을 보면, 좋았던 날이 더 많았던 것 같기도 하다.

그런데 화가 머리 끝까지 올라왔던 그 순간에는 꼭 그런 것만 같았다. 좋은 일은 하나도 없는 악덕 상사. 세상 나쁜 사람. 머릿속에 떠오르는 것은 온통 그런 기억들 뿐이었고 나의 감정은 배신감에서 억울함으로, 억울함에서 수치심으로 그렇게 이어졌다. 그렇지만 신기하게도 조금 시간이 지나자 감정이 식기 시작했고, 제법 이성적이고 객관적인 사고도 가능해졌다. 나의 분노에 정당함을 부여하려면 나는 과연 그럴만한 일이 있었노라고 계속 화를 내고 있어야 할 것 같지만, 식어가는 감정을 어찌하리오. 조금 멎쩍어도 이제 그만 분노를 거두어야겠다.




관계에는 여러 가지 면들이 얽혀있고 우리의 기억과 마음은 마치 그 모든 것을 잘 덮고 있는 밭인 것 같다. 평상시는 도드라진 것이 없다가 감정 하나를 캐내면 감추어져 있던 것들이 줄줄이 따라 올라온다. 특히 부정적인 놈일수록 속에서 고리가 잘 엮여 있다. 저랑 비슷한 놈을 어떻게 알았는지 줄줄이 끌고 나온다. 그래서 온 밭을 덮는다. 처음 올라올 때는 그 감정들이 살아서 펄떡인다. 마치 지금 일어난 일인 것처럼 강력하고 힘이 있다. 위험한 순간이다. 그렇지만 좀 기다려 보면 된다. 많은 경우는 시간이 지나면 마치 물밖에 나온 물고기가 생기를 잃듯, 밭에서 캐낸 농작물이 햇빛에 시들어가듯 그 힘이 사라져 간다. 이래서 참을 인이 셋이면 살인도 면한다고 한 것인가 보다. 그리고 말라비틀어진 감정의 쓰레기들이 온 밭에 낙엽처럼 덮여 있다. 그냥 두면 자꾸 쌓인다. 온통 덮인 감정을 옆으로 싹싹 쓸어 버리고 나의 마음에는 다시 햇살이 쏟아지게 해야겠다. 그리고 내일은 그에게 웃는 얼굴로 인사해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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