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가 은퇴 이후 삶을 돌아보며 가장 깊이 깨닫게 된 것은 단순합니다.
재정도, 명예도, 건강조차도 결국은 한순간 흩어질 수 있습니다. 그러나 세월이 흘러갈수록 끝까지 남는 것은 사랑이라는 사실입니다.
부모와 자녀의 관계를 돌아보면 더욱 그렇습니다.
저는 자녀들에게 큰소리로 훈계하는 아버지는 아니었습니다. 늘 바쁜 일상 속에 자녀들과 긴 시간을 함께하기보다, 중요한 순간마다 옆에 서 있으려 애쓴 아버지였습니다.
어린 시절 아이들과 함께 공원에 나가 놀아 준 기억보다, 늦은 귀가 길에서 사온 빵 하나를 함께 나누며 웃었던 기억이 더 많습니다. 자주 함께하지 못했던 시간이 아쉽지만, 그 부족한 시간을 메운 것은 늘 사랑의 마음이었습니다.
아내가 자녀 양육을 거의 전담하다시피 했기에, 저는 한 발짝 떨어져 지켜보는 역할을 할 때가 많았습니다. 그러나 가끔 회식이 끝난 늦은 시간, 아이들과 짧게 나눈 대화는 제 마음에 오래 남았습니다. “아빠, 내일은 같이 놀아줄 거죠?”라는 말 한마디에 마음이 뭉클했고, 피곤한 몸이지만 아이 곁에 잠시라도 앉아 있어 주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지 깨달았습니다.
세월이 흘러 자녀들이 장성하여 각자의 가정을 꾸리고 나니, 이제는 부모와 자녀의 역할이 조금씩 뒤바뀌는 것을 느낍니다.
이제는 자녀들이 저를 걱정해 줍니다. “아버지, 건강은 어떠세요?” “무리하지 마세요.”
그 말들이 예전에는 당연히 제가 했던 말이었는데, 이제는 그들의 입에서 흘러나올 때, 세월의 무게와 사랑의 깊이를 동시에 느끼게 됩니다.
폴 J. 마이어는 토탈퍼슨의 영역 중 가족을 두 번째 기둥으로 두었습니다. 그는 “가족은 삶의 진정한 성공을 판가름하는 최종 심판자”라고 했습니다. 저는 이 말을 점점 더 실감합니다. 세상에서 아무리 많은 성취를 이루었더라도, 가족이 곁에 없다면 그 성공은 결국 덧없습니다. 반대로 가진 것이 부족해도, 가족 안에 사랑이 있다면 그 삶은 풍성합니다.
저는 오랜 세월 교회 찬양대에서 베이스 파트를 맡아 왔습니다. 함께 찬양하던 시간 속에서도 느낀 것은 결국 사랑이었습니다. 제 목소리가 크지 않아도, 다른 파트와 어우러져 화음을 이루면 아름다운 음악이 되었습니다. 가족도 그렇습니다. 완벽하지 않아도, 목소리가 작아도, 사랑으로 이어져 있으면 하나의 화음을 이룹니다.
코로나 시절, 예배가 끊어지고 찬양이 멈추었던 그 고독한 시간 속에서도 남아 있던 것은 사랑이었습니다. 서로 얼굴을 마주하지 못했지만, 가족 안에서 나눈 작은 격려와 기도가 저를 버티게 했습니다. 온라인 화면을 통해 멀리 있는 자녀의 얼굴을 볼 때마다, “그래, 결국 남는 건 사랑이구나” 하는 깨달음이 마음 깊이 다가왔습니다.
부부의 관계도 마찬가지입니다.
겉으로 보기에 우리 부부는 그리 다정하지 않을지도 모릅니다. 아내는 거실 중심의 삶을, 저는 서재 중심의 삶을 살아왔기에 늘 함께 붙어 있지는 않았습니다. 때로는 작은 대화로 서운함이 오가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긴 세월을 돌아보면, 결국 우리를 지탱한 것은 사랑이었습니다.
아내가 식사 시간에 건네는 “밥 먹어요”라는 짧은 말 속에도 사랑이 있었고, 제가 아내를 위해 챙긴 작은 선물 속에도 사랑이 있었습니다. 거창하지 않아도, 그 작은 흔적들이 모여 오늘까지의 시간을 이어 주었습니다.
사랑은 거대한 선언보다도 작은 실천에서 증명됩니다.
“내가 너를 사랑한다”는 말보다, 아픈 가족을 위해 끓여 준 한 그릇의 죽, 바쁜 하루에도 잠시 앉아 건네는 안부, 힘들어 보일 때 건네는 작은 미소가 더 큰 울림이 됩니다. 저는 그것을 가족 속에서, 그리고 신앙 공동체 속에서 수없이 경험했습니다.
돌아보면, 제 인생의 설계도는 완벽하지 않았습니다. 삐뚤어진 선도 있었고, 지워야 할 선도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 위에 남아 있는 굵은 선은 언제나 사랑이었습니다.
자녀와의 관계 속에서, 아내와의 관계 속에서, 그리고 신앙 공동체 안에서—그 모든 자리마다 결국 사랑이 중심선을 이루고 있었습니다.
저는 이제 더 욕심을 부릴 나이가 아닙니다. 그러나 분명히 말할 수 있습니다.
제가 남은 세월 동안 반드시 지켜야 할 것은 사랑입니다.
그 사랑이 제 두 번째 설계도의 마지막까지 남아 있는 가장 굵은 선이 될 것입니다.
다음 화 예고
8화에서는 “몸은 영혼의 그릇이다”를 나눕니다.
몸과 영혼의 관계 속에서, 건강이 어떻게 삶의 설계도를 담아내는 그릇이 되는지를 이야기하겠습니다.
✅ “삶을 돌아보면, 결국 남는 것은 사랑이다. 그것이 인생 설계도의 가장 굵은 중심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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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연재는 브런치북 『토탈퍼슨-후반전의 길』 시리즈의 일부입니다.
매주 화요일과 금요일 삶의 방향을 찾는 이야기가 이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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