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SBN 삭제라는 강수를 두다

'고딕제거'가 불러온 어느 초보 저자의 사투기

by 이영찬

내 책이 '컬러판'으로 급히 옷을 갈아입은 이유: '고딕제거'를 아시나요?

드디어 올 것이 왔구나 싶었습니다. 2026년 1월 13일, 제 생애 첫 책 『두 번째 설계도』가 집으로 배달된 날입니다. 잉크 냄새도 가시지 않은 책장을 경건하게 넘기던 제 눈에, 믿을 수 없는 문장 하나가 날아와 박혔습니다.

“불안을 고딕제거하는 주택연금.”

심장이 내려앉는 기분이었습니다. 수차례 원고를 수정하고 또 수정했건만, 대체 어느 틈에 이 정체불명의 외계어가 숨어 들어온 것일까요? ‘고질적 제거’도 아니고 ‘획기적 제거’도 아닌, 불안을 ‘고딕제거’한다니요.



고딕제거.png 흑백판의 고딕제거 문장 사진, 우측 중간 [불안을 고딕제거하는 '주택연금']

내 사전에 대충은 없다: 6개월의 기다림 대신 ISBN을 삭제를 선택한 이유

플랫폼 측에서는 이미 발간된 책의 파일을 수정하려면 6개월을 기다려야 한다는 답변이 돌아왔습니다. 하지만 제 안의 ‘설계자’ 본능이 허락하지 않았습니다. 독자들에게 불안을 없애는 정교한 설계도를 보여주겠다고 호언장담해 놓고, 정작 저자의 문장에 ‘고딕체’ 같은 굵은 오타가 박혀 있다니요.

저는 결국 결단을 내렸습니다. 이미 등록된 ISBN을 삭제하는 강수를 두고, 입점 홍보마저 일시 중단시켰습니다. 완벽하게 수정된 원고, 그리고 더 깊어진 내용을 담은 ‘진짜’ 컬러판을 세상에 내놓기 위해서 말입니다.



20260120_153457 Yes 24.png Yes24의 표지 이미지 - 흑백판

오타가 남긴 철학: 불안의 서체는 왜 고딕을 닮았나

사고를 수습하며 곰곰이 생각해 보았습니다. 왜 내 손가락은 하필 그 단어를 쳤을까. 그런데 참 묘합니다. 우리가 노후에 느끼는 불안을 시각화한다면, 그것은 분명 얇고 가녀린 선이 아닐 겁니다. 삶의 여백을 꽉 채우며 위협적으로 다가오는 두껍고 딱딱한 고딕체에 가깝겠죠.

그 무거운 불안의 획을 통째로 들어내는 일. 어쩌면 제 무의식은 주택연금이라는 강력한 도구를 설명하기 위해, 세상에 없던 ‘고딕제거’라는 단어를 필사적으로 길어 올렸던 것일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아무리 의미가 좋아도, 설계도에 오타가 있어서는 안 되겠지요.


곧, 온전한 '두 번째 설계도'가 찾아옵니다

지금 저는 다시 책상을 마주하고 있습니다. ISBN 삭제라는 뼈아픈 과정을 거쳐, 이제 곧 오타 하나까지 정성껏 다듬은 온전한 『두 번째 설계도』가 다시 입점 홍보를 시작할 예정입니다.

이번에 나올 컬러판은 단순히 색깔만 입힌 책이 아닙니다. 저자의 당혹감과 책임감, 그리고 독자에게 단 하나의 오점도 없는 완벽한 가이드를 전하고 싶은 고집이 담긴 결과물입니다.

혹시라도 1월 중순, 그 짧은 찰나에 제 '고딕제거' 버전의 책을 만나보신 분이 있다면 그것은 일종의 운명일지도 모릅니다. 저의 가장 솔직하고 뜨거웠던 실수를 소유하신 셈이니까요.

곧 다시 열릴 검색창에서, 그리고 서점의 매대 위에서, 더 단단해진 모습으로 여러분을 기다리겠습니다. 지워지지 않을 것 같던 노후의 고딕체 불안, 제가 확실하게 지워드릴 준비를 마쳤습니다.



고딕제거.png 컬러판의 깨끗한 교정본 사진, 우측하단[불안을 제거하는 '주택연금']

"이 사투 끝에 나오는 책이라 저에게는 더욱 소중합니다"

"현재 온전한 컬러판으로의 재입점을 위해 잠시 숨을 고르고 있습니다. 며칠 뒤 각 서점 검색창에 『두 번째 설계도』를 검색해 주세요. 가장 선명한 설계도를 들고 다시 나타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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