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2.12 李 永 賛
일흔여덟의 나이, 사람들은 이제 속도를 줄이고 풍경을 보며 걸으라고 말한다. 하지만 오늘 오전, 나는 서재에서 생애 가장 치열한 전투를 치렀다. 적군은 모니터 속의 작은 숫자들과 보이지 않는 선들이었고, 아군은 돋보기 너머의 침침한 눈과 마우스를 움켜쥔 떨리는 손이었다.
전쟁의 시작은 ‘0.1mm’였다. 책의 얼굴이라 할 수 있는 표지, 그중에서도 책등이라 불리는 세로 표지의 중앙을 맞추는 일은 생각보다 가혹했다. 설계 제도판 위에서 기계 설계 도면을 그리던 50년 전의 기억이 되살아났다.
그때나 지금이나 0.1mm의 오차는 설계를 무너뜨리는 치명적인 결함이다. 책등의 너비가 8.09mm인데 제목이 한쪽으로 0.1mm만 쏠려도 책은 중심을 잃고 비틀거린다. 나는 그 정중앙에 나의 브랜드인 ‘마이타임’ 로고와 제목, 그리고 내 이름 석 자를 안착시키기 위해 수십 번 마우스를 클릭하며 좌표를 수정했다.
오늘 오전은 유독 긴박했다. 전자책 유통 마감을 앞두고 ‘파일 교체’라는 결단을 내려야 했기 때문이다. 가독성을 위해 본문의 장평을 97%로 줄이고, 줄간격을 160%로 다시 맞췄다. 누군가는 눈에 보이지도 않을 미세한 차이라고 하겠지만,
내게 그것은 독자와 저자 사이에 흐르는 ‘예의의 간격’이었다. 0.1mm를 깎고 다듬어 한 줄이라도 더 편안하게 읽히게 하고 싶은 마음, 그것은 설계자의 자존심이자 노작가의 진심이었다.
결제 버튼을 누르기 전, 마지막으로 뒷표지를 살폈다. 거기에는 파란색으로 쓰인 ‘꿈’이라는 캘리그라피가 자리 잡고 있다. 정밀한 설계도 같은 책의 마무리치고는 퍽 감성적이다. 하지만 이 0.1mm의 전쟁터에서 내가 도달하고 싶었던 종착역은 결국 그 파란 꿈이었다.
72세에 유튜브를 시작하고, 78세에 내 인생의 두 번째 설계도를 책으로 펴내는 이 무모한 도전의 연료가 바로 그 꿈이었기 때문이다.
"2월 20일 승인 예정.“
화면에 뜬 문구를 확인하고 나서야 굽어있던 허리를 폈다. 오전 내내 쏟은 에너지가 마우스 클릭 한 번에 세상 밖으로 날아갔다. 예스24 서점 페이지에 내 이름이 찍힌 책이 올라와 있는 것을 보며, 나는 비로소 전쟁터에서 돌아온 노병처럼 미소 지었다.
1만 원권 할인 쿠폰 혜택까지 더해져 독자들을 만날 준비를 마친 책을 보니, 돋보기 때문에 아려오는 눈의 피로마저 훈장처럼 느껴졌다.
누군가는 묻는다. 이 나이에 무엇을 위해 그렇게 0.1mm에 집착하느냐고. 나는 답한다.
나이는 숫자에 불과하지만, 0.1mm의 정밀함은 내 삶의 태도이다. 비록 몸은 쇠약해지고 눈은 흐릿해져도, 내 영혼의 설계도만큼은 0.1mm의 오차도 없이 뚜렷하게 그려나가고 싶다.
내일 나는 수필반 文友들에게 이 전쟁 이야기를 들려줄 것이다. 그리고 말할 것이다. 우리 인생의 두 번째 설계도는 화려한 색채보다, 0.1mm를 소중히 여기는 그 치열한 마음에서부터 완성되는 것이라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