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y
Mishell Shin
Feb 27. 2022
슈베르트를 좋아하시나요?
피아노, BBC, 인생
직장의 외국인 동료와 저녁식사를 같이하게 되었다. 코로나로 2년만에 만난 그 친구는 다소 야윈 듯 보이고 수수한 모습이었다. 코로나로 집밖에 잘 나가지 않게 되니 식사양도 줄고 해서 몸무게가 준 것 같다고 했다. 보통 반대 경우가 많은데 참…
그 친구와 이야기를 하면서 사실 많이 놀랬다. 지금 준비하는 연구보고서가 있어서 일하는 시간 외에 아침 일찍 시간을 내어서 연구 저널을 준비 중이며, 운동은 발레 비디오를 보고 발레 운동을 하는게 만족하고, 저녁에는 하루에 2~3시간씩 좋아하는 피아노 연습을 한다고 한다. 좋아하는 작곡가는 때에 따라 다른데 슈베르트를 제일 좋아하고 요즘은 쇼팽과 베토벤도 좋아한단다. 넷플릭스에서 본 한국 드라마가 있느냐고 했더니 넷플릭스는 보지않고 BBC뉴스 채널만 신청해서 BBC 만 보고 있다고 한다. 헐 ~ 뭘 이렇게 열심히 재미없게 살고 있는거임?
싱글인 그녀는 코로나가 만들어준 재택시간을 온전히 자신이 하고 싶어하는 일을 집중하며 만족스럽게 사용하고 있었다. 쇼핑이나 관광은 좋아하지 않아 집에서 일하고 책보고 피아노치면서 시간을 보낸는게 좋다고 ... 웬지 주말엔 어디를 나가야만 할 것 같고, 뭔가 나가서 맛있는 걸 먹어야 할 것 같고, 유행에 맞는 옷을 좀 사서 입어야 할 것같고, 누구를 만나야할 것 같고 그렇지 않으면 외톨이가 되지 않을까 좀 걱정이 되곤 하는데, 이 친구는 참 혼자서도 잘 지내는구나.
사실 나도 슈베르트를 좋아한다. 아마츄어가 느끼기에도 슈베르트의 즉흥곡에는 어린 시절 마냥 즐거웠던 시기와 시간이 가면서 겪게되는 굴곡진 인생이 모두 담겨 있는 것같다. 후반부로 가면서 어려워지지만 인생의 고달픔을 겪어가면서 성숙해지는 인생을 만나게 해준다. 예전에는 어렵기만 하던 곡들이 이제는 이해가 된다. 어렵지만 한음 한음을 손가락에 기억시키면서 위대한 천재 작곡가들의 인생에 대한 고뇌와 깊이를 느껴보는 일, 피아노를 다시 만나면 경험할 수 있는 신세계이다.
피아노를 제대로 치려면 신체의 3개 부분을 같이 따로 움직여야 한다고 한다. 손은 현재 악보에 두고 눈은 앞부분 악보를 보고 있어야 하며 머리는 작곡가의 생각과 감정을 전체적으로 생각하고 있어야 한다나? (약간 기억이 가물가물)다시 이렇게 시도해 볼수 있는 건 어려운 형편에 엄마가 피아노 학원을 조금이라도 보내준 덕분이다. 어릴 때 다들 한번쯤 치다가 고학년 올라가다가 그만두는 피아노이지만 조금이라도 배운 사람은 훨씬 수월하다. 애들에게 꼭 악기는 한가지씩 가르쳐줬음 좋겠고 여유가 있는 집에는 피아노가 한대씩 있었으면 좋겠다. 우리 어렸을 때는 그게 로망이였는데 요즘은 공부때문에, 층간소음 때문에 가정집에서 피아노를 보기 어려워졌다.
친구와 만난 후 혼자 맞는 주말은 뭔가 다른 느낌이다. 굳이 약속을 잡으려 하지 않고, 굳이 어디를 나가려하지 않고, 나도 마음에 부담만 있고 계속 진도 안나가던 논문 작업을 하고, 글을 쓰고, 운동하고, 시간 없다고 미뤄뒀던 피아노 연습도 하고 혼자만의 시간을 충분히 유익하게 사용해본다. 넷플릭스도 최대한 안보려고 노력하고. 이래서 사람을 만나긴 해야하는데 ~
그 친구 주말엔 가끔 불러내서 바깥바람도 쐬어 주고 몸보신도 좀 시켜줘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