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고등교육국제화 3
한국 고등교육의 국제화를 이야기할 때, 서울대학교의 미네소타 프로젝트와 함께 반드시 언급해야 할 또 하나의 분기점이 있다. 바로 KAIST의 설립이다. 두 사례는 모두 미국의 연구중심대학 모델을 한국에 도입하려는 시도였지만, 접근 방식은 근본적으로 달랐다. 서울대가 기존 국립대학의 내부 개혁을 통해 미국식 대학을 ‘이식’하려 했다면, KAIST는 미국의 연구중심대학을 한국에 아예 새로 만들어보려는 실험이었다.
KAIST는 1971년, 한국이 본격적인 산업화 단계로 진입하던 시기에 탄생했다. 당시 한국은 산업 발전을 이끌 과학기술 인력과 연구 역량이 절대적으로 부족한 상황이었다. 기존 대학들은 교육 중심으로 운영되고 있었고, 산업 현장과 직접 연결되는 연구 기능은 매우 제한적이었다. 정부는 이 문제를 기존 대학의 점진적 개혁만으로는 해결하기 어렵다고 판단했고, 그 결과 산업 발전에 직접 기여하는 연구 인력을 집중적으로 양성할 별도의 대학을 설립하는 구상이 등장하게 된다.
이 구상을 구체적인 정책 제안으로 발전시킨 인물로는 해외에서 활동하던 과학자들이 거론된다. 특히 당시 미국에서 활동하던 학자들은 두뇌 유출 문제를 해결하고, 해외 유학에 의존하지 않고도 고급 연구 인력을 국내에서 길러낼 수 있는 체제가 필요하다는 점을 강조했다. 이러한 문제의식은 대통령과 정책 핵심부에 의해 국가 전략 차원에서 수용되었고, KAIST 설립으로 이어졌다.
KAIST의 설립 과정은 한국 고등교육 행정사에서 매우 이례적이다. 당시 고등교육을 관할하던 문교부는 기존 대학 체제와의 충돌을 우려하며 별도의 특수 과학기술대학원 설립에 비교적 신중한 태도를 보였다. 그러나 산업화 전략의 시급성을 인식한 대통령은 과학기술 인력 양성을 기존 교육 행정의 틀에만 맡길 수 없다고 판단했고, 그 결과 KAIST는 문교부가 아닌 과학기술처 산하 연구대학원으로 설립되었다.
이 선택은 KAIST가 일반 종합대학이 아니라, 연구와 기술 개발을 핵심 임무로 하는 국가 전략 기관으로 출범했음을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동시에 이는 한국의 고등교육 국제화가 기존 제도 내부의 점진적 개혁만이 아니라, 필요할 경우 제도 바깥에서 새로운 모델을 창출하는 방식으로도 추진되었음을 보여주는 사례였다.
KAIST는 기존 대학을 개혁하는 방식이 아니라, 미국의 연구중심대학을 본떠 한국에 새롭게 구현하고자 한 시도였다. 설립 재원 역시 미국 국제개발처(USAID)의 지원을 핵심으로 활용했으며, 이 과정에서 미국 측 전문가들의 타당성 검토가 중요한 참고 틀이 되었다. 스탠포드 터만보고서에서 제시하는 연구와 교육의 결합, 산업과의 연계, 국가전략과 연계등 KAIST의 기본 성격을 규정하는 데 큰 영향을 미쳤다. 그 결과 KAIST는 출범 단계부터 학부 중심 대학이 아닌 연구 중심 대학원, 산업 문제 해결에 기여하는 연구기관이라는 정체성을 분명히 하게 된다.
KAIST의 국제화는 부가적인 정책이 아니라 설계 단계부터 전제 조건이었다. KAIST는 설립 초기부터 영어로 강의가 진행되는 대학원 중심 교육을 운영하기 시작했다. 이는 국제화를 위한 상징적 조치라기보다, 국제 학술 공동체에 곧바로 연결되는 연구대학을 만들기 위한 실질적 선택으로 보인다.
이 원칙은 이후 학부 과정으로까지 확장된다. 2006년 이후 KAIST는 학부 강의에서도 영어 강의를 단계적으로 확대했고, 현재는 대부분의 강의를 영어로 진행하고 있다. 또한 KAIST는 비교적 이른 시기부터 해외에서 총장을 영입하고, 외국인 교수 임용에도 적극적인 태도를 보이며 대학 운영과 연구 문화를 국제 기준에 맞추려 했다.
KAIST의 성과는 단순한 대학 순위 이상의 의미를 지닌다. KAIST는 반도체, 정보통신, 에너지, 바이오 등 한국 산업 발전의 핵심 분야에서 연구 인력을 배출하며 기술 혁신을 견인해 왔다. 교육과 연구가 산업과 직접 연결되는 구조 속에서 KAIST는 기술 발전을 통해 국가 경쟁력을 높이는 대학이라는 독자적 위상을 확립했다.
이 점에서 KAIST는 한국 고등교육 국제화의 또 다른 얼굴이다. 서울대가 교육과정과 교수 역량을 국제 기준으로 끌어올리는 데 기여했다면, KAIST는 국제 연구 경쟁에 즉시 투입 가능한 연구대학을 압축된 시간내에 국내에 구축한 사례라 할 수 있다.
1960년대 서울대학교의 미네소타 프로젝트와 KAIST의 설립은, 당시 세계적으로 경쟁력을 키워가던 미국 대학의 모형을 참고해 이를 한국의 국가 전략과 산업 발전에 부합하는 연구대학으로 재구성하려는 공통된 문제의식에서 출발했다. 서울대의 경우 기존 국립대학을 대상으로 교육과정과 교수 역량을 개혁하는 방식이었다면, KAIST는 아예 처음부터 연구 중심·산업 연계형 대학을 새롭게 설계하려는 시도였다. 접근 방식은 달랐지만, 두 사례 모두 미국 대학이 보여주던 연구 중심성, 국제 학술 경쟁 참여, 인적 자본에 대한 집중 투자를 한국의 조건 속에서 구현하려 했다는 점에서 같은 시대적 고민의 산물이라 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