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대, 미네소타 프로젝트

한국 고등교육의 국제화 2

by Clara Shin

‘사람’에 대한 투자가 일군 기적

한국전쟁의 포화가 멈춘 1950년대 초, 대한민국의 교육 시스템은 문자 그대로 폐허 위에 서 있었다. 전국적으로 학교 건물의 상당수가 파괴되었고, 전쟁 이전 국가 예산의 약 11%를 차지하던 교육비 비중은 전후 2.6% 수준으로 급감했다. 고등교육 기관의 상황은 더욱 절망적이었다. 교육 인프라는 물론 교수진, 교재, 연구 환경까지 거의 모든 기반이 붕괴된 상태였다.

이러한 위기 속에서 1954년, 한국 정부는 대학교 시설 복구를 위한 미국 원조 자금을 확보하게 된다. 이때 서울대학교 총장은 한정된 자원을 전국에 분산하기보다, 서울대학교에 집중 투자해 국가 재건을 이끌 핵심 인재를 먼저 길러내자는 제안을 내놓았다. 정부가 이를 수용하면서 시작된 것이 바로 **‘미네소타 프로젝트(Minnesota Project)’**다. 1954년부터 1961년까지 진행된 이 프로젝트는 서울대학교와 미네소타대학교 간의 교육 협력 프로그램으로, 미국 국제협력처(ICA, 현 USAID)의 지원을 받아 전 세계 77개 고등교육 협력 사업 가운데 가장 성공적인 사례 중 하나로 평가받고 있다.


국제화의 한 형태로서의 ‘교육과정 수입’

미네소타 프로젝트의 핵심은 단순한 재정 지원이나 건물 복구가 아니었다. 이 사업은 국제화의 한 형태로서, 미국 대학의 교육과정·교수법·대학 운영 체계를 서울대학교에 본격적으로 이식하려는 시도였다. 다시 말해, 외국인 유학생을 유치하는 국제화가 아니라, 대학 내부의 학문 체질을 국제 기준에 맞게 재편하는 국제화였다.

프로젝트를 통해 서울대학교는 총 약 1,000만 달러의 지원을 받았다. 이 가운데 약 348만 달러는 교수 연수와 교육 프로그램 개선 등 기술 원조에 사용되었고, 약 267만 달러는 시설과 장비 확충에 투입되었다. 무엇보다도 주목할 점은 투자 우선순위가 건물이나 장비가 아니라 **‘사람’**에 놓였다는 사실이다.

총 218명의 서울대 교수들이 미국으로 파견되어 장기 연수와 학위 과정을 이수했고, 이 가운데 박사 학위 취득자는 15명, 석사 학위 취득자는 71명에 달했다. 이들은 단순한 시찰단이 아니라, 미국 대학의 강의 방식과 커리큘럼, 연구 문화 자체를 몸으로 익히고 돌아온 인력들이었다. 귀국 이후 이들은 서울대학교의 교육과 연구를 사실상 새로 설계하는 핵심 주체가 되었다.


의학·공학·농학 중심의 선택적 국제화

미네소타 프로젝트의 또 다른 특징은 분야 선택의 분명함이었다. 연수와 교육과정 개편은 주로 의학, 공학, 농과대학을 중심으로 이루어졌다. 이는 당시 한국 사회가 처한 현실과 직결된 판단으로 **'경제 재건과 직접적인 관련이 있는 전문 기술 인력 양성'**에 초점을 맞춰졌다. 반면 순수 자연과학 분야의 연구 기반 강화는 상대적으로 미흡했다는 평가도 뒤따른다. 기초과학보다는 응용과학과 실용 학문을 우선시한 선택은 단기적으로는 국가 재건에 기여했지만, 장기적 연구 생태계 구축에는 한계를 남겼다.


기존 대학을 내부에서 바꾼 실험

미네소타 프로젝트는 이후 설립된 KAIST와도 분명히 구별된다. KAIST가 미국의 연구중심대학 모델을 새롭게 도입해 별도의 기관으로 설계된 사례라면, 미네소타 프로젝트는 이미 존재하던 국립대학을 내부에서부터 바꾸려 한 실험이었다. 이는 기존 대학의 조직과 문화, 교수 집단을 국제 기준에 맞게 재편하려 했다는 점에서 더욱 어려운 시도였다.

서울대학교는 이후 한국 고등교육의 중심축으로 자리 잡았고, 미국식 학문 체계와 교육과정을 비교적 안정적으로 정착시켰다. 다만 이 과정에서 서울대에 자원이 집중되면서, 다른 국립대학들의 발전이 상대적으로 지연되었다는 비판도 함께 제기된다. 국제화의 성과가 한 대학에 편중되었다는 점은 미네소타 프로젝트가 남긴 구조적 과제이기도 하다.


국제화의 성과와 한계

그럼에도 불구하고 미네소타 프로젝트의 역사적 의미는 분명하다. 전쟁 직후 극도로 열악한 재정 여건 속에서도, 한국은 교육과 국제화에 대한 투자를 국가 재건 전략의 핵심으로 선택했다. 해외 유학과 연수, 교육과정 수입을 통해 인적 자본을 축적하고, 이를 다시 대학과 연구기관에 환원시키는 구조를 만들어냈다. 이후 관악 캠퍼스 이전과 종합화 과정을 거치며 서울대는 연구중심대학으로 도약했고, 오늘날 세계 대학 평가에서 상위권에 이름을 올리는 대학으로 성장했다. 이 과정의 출발점에는 미네소타 프로젝트라는 국제화 실험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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