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등교육 질적 도약의 변곡점
1999년 시작된 ‘두뇌한국21(BK21)’ 사업은 한국 고등교육 정책사에서 가장 결정적인 전환점이었다. 외환위기라는 전례 없는 국가적 경제난 속에서도 대규모 예산을 대학에 투입하기로 한 정부의 결정은, 단순히 연구비를 지원하는 프로젝트를 넘어 한국 대학의 체질을 ‘국제 표준(Global Standard)’으로 재편한 고등교육 국제화 사업의 실질적인 시발점이 되었다.
BK21은 설계 단계부터 ‘국제적 인지도 확보’를 전면에 내세웠다. ‘세계 100대 대학 육성’이라는 목표는 국내 대학 간의 서열 경쟁을 세계 무대로 확장시켰으며, 대학 평가의 핵심 요소인 연구 역량 강화에 집중하게 했다. 이를 위해 도입된 성과지표로 SCI(과학기술논문 인용색인)급 논문 게재 수와 해외 학회 발표 실적 등을 핵심 지표로 설정한 것은 한국의 교수와 대학원생들이 해외 학계에서 통용되는 언어와 논리로 경쟁하도록 유도한 시스템적 전환이었다.
BK21은 철저하게 성과 중심의 선택과 집중 방식을 택했다. 전일제 대학원생에게 매월 연구장학금을 직접 지원하여 학문후속세대가 연구에만 전념할 수 있는 환경을 조성했으며, 박사후연구원(Post-Doc) 인건비 지원을 통해 우수 인재들이 국내에 남아 연구할 수 있는 기반을 마련했다. 반면, 성과를 내지 못하는 사업단은 도태되는 엄격한 경쟁 분위기를 조성함으로써 대학 사회에 긴장감을 불어넣었다. 이러한 과정은 연구비 중앙관리제 정착과 학부 정원 감축 등 대학 구조조정과 맞물려, 한국 대학이 학부 중심에서 연구 중심 대학 체제로 개편되는 결정적인 역할을 하였다.
BK21이 한국 학계에 가져온 가장 큰 변화는 연구의 ‘글로벌화’다. SCI급 논문 작성이 필수화되면서 연구 언어의 영어화가 급격히 진행되었고, 이는 한국 학자들이 세계 연구자들과 실시간으로 소통하는 기반이 되었다. 또한, 사업비 지원 항목에 국제학술대회 참가비와 해외 연수 경비를 명시하여 학생과 연구자들이 세계 무대로 나갈 수 있는 통로를 넓혔다. 단순히 해외 학회에서 발표하는 것에 그치지 않고, 다양한 해외 교환 프로그램과 파견 지원을 통해 해외 유수 연구진과 네트워킹을 형성하며 국제 공동연구를 활성화하는 가교 구실을 하였다.
이러한 노력은 대학 평가 지표의 내재화로 이어졌다. QS나 THE 등 세계 대학 평가의 핵심 요소인 '논문 피인용도'와 '학계 평판도'를 대학 차원에서 관리하기 시작한 시발점이 바로 BK21이었다. 그 결과, 사업 초기 100위권 밖이었던 서울대학교가 1단계 사업을 거치며 QS 세계 대학 순위 100위권 내에 성공적으로 진입하였으며, KAIST, 연세대, 고려대 등 주요 대학들 역시 세계적 수준의 연구 대학으로 도약할 수 있는 제도적·학문적 기반을 갖추게 되었다.
당시 미국과 독일의 주요 과학 저널들은 한국이 짧은 시간 내에 우수한 논문을 대거 배출하고 있음을 주목하며, 그 배경으로 BK21과 같은 정부의 파격적인 연구 지원 시스템을 지목하기도 했다. 이렇듯 BK21은 표면적으로는 연구 지원 사업이었으나, 본질적으로는 한국 대학의 국제성을 극대화하기 위한 대형 프로젝트였다. BK21을 통해 도입된 국제 표준의 연구 문화와 경쟁 시스템은 한국 고등교육 국제화의 시발점이 되었으며, 오늘날 한국 대학이 글로벌 무대에서 경쟁할 수 있는 근본적인 동력이 되었다. 이제 국제화는 한국 대학에 있어 더 이상 선택이 아닌 필수적인 생존 전략으로 자리 잡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