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제화가 전면에
세계은행(World Bank)의 교육 전문가 살릴 자밀(Salmi Jamil)은 **세계 수준의 대학(World Class University)**을 정의하며 세 가지 핵심 요소를 강조했다. 그것은 바로 **'우수한 인적 자원(재능 있는 학생과 교수)', '풍부한 자원(재정 및 인프라)', 그리고 '자율성과 유연성을 갖춘 거버넌스'**이다. 오늘날 전 세계 수많은 국가는 이러한 요건을 갖춘 대학을 보유하는 것이 국가 경쟁력의 핵심임을 인식하고, 세계적인 대학을 만들기 위한 투자와 노력을 가속화하고 있다. 한국 역시 이러한 흐름 속에서 2000년대 후반, 우리 대학들을 세계 무대의 전면으로 내세우기 위한 본격적인 행보를 시작했다.
1. 한국 대학의 글로벌 데뷔: WCU 사업의 등장
한국 고등교육이 '세계적인 대학'이라는 명확한 목표를 향해 체계적인 투자를 시작한 기점은 바로 2008년 출범한 WCU(World Class University, 세계수준의 연구중심대학 육성 사업) 시기라고 볼 수 있다. 이는 과거 BK21 사업이 국내 대학의 연구 기초 체력을 기르는 '아웃바운드(Outbound)' 방식에 주력했던 것에서 나아가, 세계적 석학을 국내로 직접 끌어들이는 '인바운드(Inbound) 국제화'를 통해 대학의 질적 수준을 단숨에 끌어올리고자 한 파격적인 시도였다.
2. '우연'을 넘어선 성과: 해외네트워크와 피인용도
2008-2013년 WCU 사업 기간 동안 서울대가 세계 30위권에 진입하고 연세대와 고려대가 100위권의 벽을 허문 성과가 우연이였을까? 대학의 글로벌 순위를 결정짓는 가장 큰 지표인 학계 평판도와 논문 피인용도 측면에서 WCU는 결정적인 역할을 했음을 언급한 논문들이 있다. 초빙된 해외 석학들은 자신들의 방대한 글로벌 연구 네트워크를 한국 대학에 직접 연결했다. 이들과의 공동 연구는 한국 대학의 연구 가시성(Visibility)을 극대화했고, 이는 곧 논문의 피인용도(Citations) 급증으로 이어져 대학 순위 상승의 직접적인 인과관계가 되었다.
3. 연구 문화의 혁신: 개방적·수평적 풍토의 정착
WCU 사업의 진정한 가치는 단순히 지표의 상승에만 있지 않다. 세계적 석학들의 유입은 한국 특유의 수직적이고 보수적이었던 대학 사회에 개방적이고 수평적인 연구 풍토를 이식했다. 교수와 학생 간의 자유로운 토론, 아이디어 중심의 협업 체계는 새로 신설된 융합학과들을 중심으로 확산되었다. 학생들은 한국에 앉아서 세계적 거장들과 소통하며 글로벌 스탠다드에 맞는 연구 에티켓과 프로세스를 체득했다. 이러한 무형의 변화는 한국 대학의 연구 DNA를 근본적으로 재편하는 성과를 거두었다.
4. 국제화를 향한 명시적 의지와 제도적 유산
물론 예산의 집중도나 석학의 체류 방식 등에 대한 일부 비판적 시각도 존재한다. 그러나 '국제화'를 사업의 최우선 가치이자 명시적 목표로 설정하고 국가적 역량을 집중했다는 점은 이 사업의 독보적인 의의다. 이 시기에 정착된 세계 석학 초빙 가이드라인과 국제 연구 지원 체계는 이후 한국 대학들이 해외 우수 인력을 유치하고 관리하는 표준적인 모델이 되었다.
결론
결과적으로 WCU 사업은 한국 대학들이 세계 무대에서 당당히 경쟁하도록 만든 실질적인 기폭제였다. 자밀이 언급한 '인적 자원'과 '자율적 거버넌스'의 중요성을 현장에 적용하며, 석학들의 네트워크와 수평적 연구 문화를 통해 한국 고등교육의 체질을 개선한 이 사업은 이제는 도전적이고 성공적인 국제화 프로젝트로 평가받기 충분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