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역의 한계를 넘어 글로벌 명문으로

호주의 지역대학 육성 전략과 시사점

by Clara Shin

호주의 위기의식과 정책적 전환점 (2017)

2010년대 중반까지 호주의 고등교육 생태계는 시드니와 멜버른 등 대도시의 명문 대학 그룹인 'Group of Eight(Go8)'을 중심으로 극심하게 편중되어 있었다. 지역과 농어촌(Regional, Rural and Remote, RRR)의 학생들은 지리적·경제적 장벽으로 인해 고등교육에서 소외되었고, 이는 국가 균형 발전의 저해 요소로 작용하였다. 특히 국제 유학생의 대도시 쏠림 현상은 지역 경제의 공동화를 심화시키는 원인이 되었다. 이러한 위기 속에 2017년 발표된 '국립 지역 및 농어촌 교육 전략(National Regional, Rural and Remote Education Strategy)', 일명 홍지 보고서(Halsey Report)는 호주 교육 정책의 거대한 전환점이 되었다. 호주 정부는 단순히 교육 평등의 차원을 넘어, 지역대학을 지역 경제의 심장이자 국가 경쟁력의 새로운 동력으로 재정의하며 특화된 지원을 본격화하였다.


'선택과 집중'을 통한 호주의 혁신 전략

호주의 전략은 보편적 지원이 아닌 철저히 '특화된 수월성'과 '물리적 장벽 해소', 그리고 '글로벌 지표의 전략적 관리'에 집중되었다. 우선 지역 대학 센터(Regional University Centres, RUC)를 도입하여 대학 건물을 새로 짓는 대신 지역 사회의 유휴 공간을 고도의 학습 거점으로 재탄생시켰다. 이 센터는 단순히 공부방 역할에 그치지 않고 대도시 명문 대학의 교육 과정을 현지에서 완벽히 소화할 수 있는 디지털 인프라와 학습 지원 인력을 제공함으로써, 지역 학생이 고향을 떠나지 않고도 최고 수준의 교육을 받을 수 있는 물리적 기반을 마련하였다.

또한 학문 분야별 수월성 확보를 위해 ERA(Excellence in Research for Australia)라는 정교한 평가 제도를 활용하였다. 정부는 대학 전체의 덩치를 키우는 대신 특정 학문 단위에서 우수한 실적을 거둘 수 있도록 유도하였는데, 이를 통해 지역대학들이 농업, 해양학, 광산학 등 지역 특화 분야에서 'World Standard' 이상의 등급을 획득하도록 집중 지원하였다. 이는 지역대학이 종합 순위의 열세를 극복하고 특정 전공에서만큼은 세계적인 브랜드 파워를 갖게 하여, "작지만 강한 분야"를 중심으로 글로벌 인재를 유인하는 핵심 전략이 되었다.

마지막으로 지역 기업의 난제를 해결하는 연구에 정부가 직접 개입하는 매칭 펀드 제도를 활성화하였다. 지역 기업이 대학 연구에 투자할 경우 연방 정부가 동일한 금액을 추가로 지원하는 시스템을 통해 대학을 '지역 혁신 허브'로 변모시켰다. 이러한 정책적 노력은 세계 대학 평가(THE)의 산학협력 수입(Industry Income) 지표에서 지역대학들이 대도시 대학들을 압도하는 결과를 낳았으며, 대학의 연구가 지역 산업의 경쟁력으로 직결되는 선순환 구조를 정착시켰다.


국제화 전략: 세계 랭킹을 견인하는 핵심 엔진

호주가 지역대학을 포함하여 다수의 대학을 세계 100위권에 진입시킬 수 있었던 결정적 요인은 국제화 지표를 전략적으로 관리한 데 있다. 우선 국제 학생 및 교원 비율을 대학 평가의 핵심 동력으로 삼아, 지역대학들이 다양한 국적의 인재를 유치할 수 있도록 비자 혜택과 정주 여건을 파격적으로 개선하였다. 국제화 지표는 QS와 THE 평가에서 상당한 비중을 차지할 뿐만 아니라 대학의 개방성을 상징하기에, 호주 정부는 지역대학들이 "Regional but International"이라는 이미지를 구축하도록 국가 차원의 공동 마케팅을 전개하였다. 호주주요 대학들은 이지표에서 거의 모든 대학이 만점을 받고 있다.

글로벌 연구 네트워크(International Research Network)의 확대 역시 빼놓을 수 없는 핵심 전략이다. 호주 정부는 지역대학이 단독으로 연구를 수행하기보다 해외 유수 대학 및 대도시 명문대(Go8)와 공동 논문을 발표할 때 우선적인 예산을 배정하였다. 이는 논문의 피인용 수(Citations)를 비약적으로 상승시키는 효과를 가져왔으며, 국제 공동 연구 네트워크 지표 점수를 높여 지역대학들이 세계 대학 순위 상위권으로 진입하는 결정적인 수단이 되었다.

나아가 지역대학의 국제적 노출도를 높이기 위해 공격적인 외국인 교수 임용과 글로벌 교환 프로그램을 실시하였다. 파격적인 연구 환경 제공을 통해 세계적 석학들이 지역대학에 적을 두게 하였고, 지역대학 학생들에게는 대도시 명문대와 동등한 수준의 해외 연수 기회를 보장하여 인재 유입을 유도하였다. 이러한 노력의 결과로 2015년경 4~5개에 불과했던 호주의 세계 100대 대학 수는 현재 9개 내외로 확대되었으며, 이는 지역대학들이 글로벌 표준에 맞춘 체질 개선에 성공했음을 의미한다.


정책의 결실: UTS와 커틴 대학교의 성공 사례

호주 정부의 전략적 지원을 통해 명문으로 도약한 대표적인 사례가 시드니 공과대학교(UTS)와 커틴 대학교이다. UTS는 과거 기술 중심의 실무 대학이었으나, 정부의 연구 수월성 정책에 따라 AI와 데이터 과학 등 첨단 분야에 역량을 집중하였다. 특히 해외 40개국 대학과 전략적 파트너십을 맺고 공동 연구 비중을 의도적으로 높임으로써 국제화 지표에서 높은 점수를 획득했고, 그 결과 2025년 QS 세계 대학 순위 88위에 안착하는 성과를 거두었다.

서호주의 커틴 대학교는 지리적 고립을 오히려 기회로 바꾼 사례이다. 커틴 대학교는 지역 산업인 광산공학(Mining Engineering) 분야에 집중 투자하여 해당 전공 세계 순위 2위라는 기록을 세웠다. 동시에 지역 대학 센터(RUC)를 활용해 원거리 지역 학생들에게 현장 밀착형 교육을 제공하고 싱가포르, 두바이 등지에 해외 캠퍼스를 확장함으로써 국제적 인지도를 확보하였다. 이들은 종합 순위보다 분야별 전문성이 대학의 전체 평판을 어떻게 바꿀 수 있는지를 증명하는 모델이 되었다.


한국형 모델에의 적용: 지역의 우수인재 확보, '상생 학위'와 '연구 사다리'의 설계

호주의 사례는 한국의 '글로컬 대학' 사업이나 지역대학 육성 계획에 실질적인 대안을 제시한다. 우선 지역 대학의 신입생 충원 문제를 고려하여, 지역 대학에 입학하되 수도권 명문대와 공동 교육과정을 이수하는 '공동 학위제' 혹은 '복수 학위제' 모델이 현실적이다. 우수한 인재가 지역에서도 수도권 수준의 수업과 학위 가치를 보장받는 여건이 마련된다면 지역 대학의 경쟁력은 자연스럽게 회복될 수 있을 것이다.

또한 학부 졸업 이후의 연구 인력 선순환을 위해 지역 대학원에 진학하는 인재에게는 전폭적인 혜택이 주어져야 한다. 장학금 지원은 물론, 지역 대학원생들에게 해외 우수 대학 교환 연구 프로그램 참여 기회를 최우선적으로 보장하여 지역 대학원이 세계적인 연구자로 성장하는 가장 빠른 사다리가 되도록 설계해야 한다. 마지막으로 지역 문제 해결 노력을 THE Impact Rankings(SDGs)와 같은 글로벌 지표로 체계화하여 관리한다면, 지역 대학의 위상을 국제적으로 높이는 데 큰 도움이 될 것이다.


결론

호주는 대학 평가 지표를 치밀하게 분석하여 정책화한 전략적 접근과 지역 대학을 국가 자산으로 인식한 장기적 투자를 통해 지역대학의 명문화에 성공하였다. 우리도 수도권 대학과의 공동 학위제를 통한 가치의 공유, 그리고 지역 연구 인력에 대한 글로벌 수준의 지원을 통해 지역 대학의 위기를 글로벌 도약의 기회로 전환해야 한다. 지역 대학에 입학하는 것이 손해가 아니라 오히려 세계로 나가는 더 넓은 문이 될 때 진정한 지역 시대가 열릴 것이다. 호주의 사례처럼 대학의 명성을 의도적으로 설계하고 국제화와 연구 네트워크를 강화한다면 한국의 지역 대학들 역시 글로벌 명문 대학으로 도약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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