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항공대, 국제화의 또 다른 경로
2010년 9월, 영국의 대학 평가 기관 THE(Times Higher Education)가 발표한 세계대학순위는 전 세계 대학가에 적지 않은 충격을 안겼다. 개교한 지 불과 24년밖에 되지 않은 한국의 지방 소규모 대학, 포항공과대학교(POSTECH)가 세계 28위에 오르며 서울대와 KAIST를 제치고 국내 1위를 기록했기 때문이다.
당시 THE는 대학의 역사나 규모, 평판보다 논문 피인용도와 연구의 질에 가중치를 두는 평가 방식을 도입했는데, 이는 오로지 연구 성과로 승부해온 포항공대의 전략이 국제 기준에서 정당성을 인정받았음을 의미했다. 이 사건은 한국 대학 국제화의 또 다른 가능성을 보여준 상징적인 순간이었다.
포항공대의 국제화는 외형적 교류 확대나 유학생 수 증가에서 출발하지 않았다. 설립 단계에서부터 세계 최고 수준의 대학을 내부 기준으로 삼는 방식의 국제화가 선택되었다. 박태준 설립이사장은 대학 설립을 준비하며 미국의 칼텍(Caltech)을 목표 모델로 설정했다.
당시 칼텍 관계자들조차 “한국 같은 개발도상국이 어떻게 이런 대학을 만들 수 있겠느냐”며 회의적인 반응을 보였다고 전해진다. 그러나 박 회장은 포기하지 않았다. 이는 1960년대 말, 월드뱅크가 제철소 설립을 “사업성이 없다”며 거절했던 경험과 닮아 있다. 훗날 월드뱅크 조사관이 “내 보고서는 경제학적으로 완벽했지만, ‘박태준’이라는 변수를 넣지 않았다”고 회고한 일화는, 포항공대 역시 기존의 국제 경로을 그대로 따르기보다, 교육에 대한 투자를 통해 그 기준을 정면으로 넘어서려 한 선택이었음을 보여준다.
포항공대 국제화의 핵심은 제도보다 사람이었다. 박태준 이사장은 “대학의 수준은 건물이 아니라 교수의 수준이 결정한다”는 원칙 아래, 해외에서 활동하던 한국인 석학과 외국인 연구자들을 직접 찾아 나섰다. 미국 현지 수준의 연봉, 주거와 자녀 교육까지 포함한 파격적 조건은 단순한 인력 유치가 아니라 세계 학문 시장에서의 경쟁 선언이었다.
초대 학장 김호길 박사와 함께 이뤄진 이 ‘삼고초려’의 결과, 젊고 역량 있는 연구자들이 포항으로 모여들었다. 학년당 300명 수준의 소수 정예 학생, 교수 대 학생 비율 1:5라는 밀도 높은 구조는 국제 최상위 연구대학에서나 가능한 연구 환경을 구현했고, 포항공대는 짧은 시간 안에 세계 학술 네트워크의 일원이 되었다.
포항공대는 국가 주도로 설립된 KAIST와 또 다른 국제화 경로를 걸었다. KAIST가 비교적 대규모 인력 양성과 국가 산업 전략에 초점을 맞췄다면, 포항공대는 기업이 설립했음에도 불구하고 기초과학과 원천기술 연구를 대학의 중심에 놓았다.
포스코의 안정적 재정 지원은 단기 성과 압박을 줄였고, 무학과제 도입과 같은 파격적 교육 실험을 가능하게 했다. 1994년 완공된 방사광가속기는 한국 과학계가 세계 연구 인프라 경쟁에 본격적으로 진입했음을 알리는 신호였으며, 노벨 물리학상 수상자인 로버트 러플린 교수를 총장으로 영입한 결정은 포항공대가 처음부터 국내 대학이 아닌 ‘세계 대학’을 지향했음을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포항공대의 성공은 국제화가 반드시 수도권 집중이나 규모 확대를 통해서만 가능한 것은 아님을 입증했다. 서울이 아닌 지방에서도, 소규모 대학이라도, 국제 기준을 정확히 설정하고 이를 일관되게 실행한다면 세계 최상위 대학으로 도약할 수 있다는 사실을 보여준 것이다.
최근 포스코그룹이 향후 10년간 1조 2천억 원의 추가 투자를 결정한 것도 이러한 맥락에서 이해할 수 있다. 교원 확충, 글로벌 연구 허브 구축, ‘체인지업 그라운드’를 중심으로 한 창업 생태계 강화는 포항공대가 이제 단순한 연구대학을 넘어 국제 혁신 플랫폼으로 진화하고 있음을 시사한다.
포항공대의 사례는 한국 고등교육 국제화가 반드시 동일한 경로를 따를 필요는 없다는 점을 말해준다. 학생 이동이나 교류 확대가 아닌, 연구의 질과 사람에 대한 투자, 그리고 국제 기준의 내면화. 비웃음을 경이로 바꾼 포항공대의 선택은 오늘날 한국 대학들이 국제화를 다시 고민할 때, 여전히 강력한 질문을 던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