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척, 떠남의 결단과 성찰의 풍경이 만나는 곳

준경묘와 죽서루, 왕조의 시작과 선비의 동경

by Clara Shin

강릉에 머무르며 문득, 왜 이 관동지방이 조선 선비들에게 일생에 한 번은 찾아야 할 ‘로망’의 공간이 되었는지를 생각해보게 된다. 그러던 중 삼척의 준경묘 유적 이야기를 접하고 적지 않은 놀라움을 느꼈다. 첩첩산중 동해안의 한 군(郡)으로만 알려진 삼척이(지금은 시), 조선 왕조의 건국 서사에서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다는 사실을 얼마나 많은 이들이 알고 있을까.


떠남의 결단, 이안사의 서사


조선 왕조의 뿌리를 이야기할 때 빠지지 않는 인물이 바로 태조 이성계의 고조부로 전해지는 이안사(목조)다. 전해지는 바에 따르면, 그는 전주 지역에서 세력을 형성하고 있었으나 당시 전주 현감과의 갈등 속에서 가문의 존립 자체가 위협받는 상황에 놓였다고 한다. 이러한 배경 속에서 그는 일가와 주민들을 이끌고 새로운 터전을 찾아 나서는 결단을 내렸으며, 일부 기록과 전승에서는 약 170여 가구를 이끌고 동북 방향으로 이동했다는 이야기가 전해진다.


이 서사는 《용비어천가》 등 조선 초기 문헌에 반영되며 왕조의 정통성을 설명하는 중요한 기원 이야기로 자리 잡았다. 다만 이동 규모나 구체적 경로 등은 사료에 따라 차이가 있어, 이를 그대로 사실로 단정하기보다는 역사적 사실과 상징적 서사가 결합된 건국 서사로 이해하는 것이 보다 타당하다.


이안사의 이동 서사에는 상징적인 설화도 덧붙여진다. 삼척에 이른 그가 이 지역에서 한 노승을 만나 지금의 준경묘 터를 명당으로 소개받았다는 전승이다. 노승은 “백 마리의 소와 금으로 만든 관으로 제사를 지내면 훗날 왕이 태어날 것”이라고 예언했다고 전해진다. 그러나 형편이 넉넉하지 않았던 이안사는 이를 그대로 따를 수 없었고, 대신 흰 소와 보리수로 만든 관으로 제사를 올렸다는 이야기가 이어진다. 이른바 ‘백우금관(百牛金棺)’ 설화는 이렇게 현실과 이상 사이의 간극을 드러내면서도, 훗날 조선 왕조의 탄생을 예견하는 상징적 장치로 기능하게 된다.


삼척에 정착한 것도 잠시였다. 전주에서 자신을 압박했던 현감이 삼척 인근으로 부임해 온다는 소식이 전해지자, 이안사는 다시금 삶의 터전을 옮길 결단을 내린다. 그는 동해안을 따라 더 북쪽으로 이동해 결국 함경도 일대에 자리 잡게 된다. 이 반복된 이동은 단순한 도피라기보다, 외부 권력에 휘둘리지 않고 스스로의 삶을 지키려 했던 한 가문의 주체적 선택으로도 읽힌다.


왕조의 기원을 상징하는 공간, 준경묘

이러한 서사가 물리적 공간으로 구현된 곳이 바로 삼척의 준경묘다. 이곳은 태조 이성계의 5대조 묘로, 조선 건국 이후 국가적 제향의 대상이 되며 왕실의 기원을 상징하는 장소로 자리 잡았다.

준경묘에 전해지는 ‘백우금관’ 이야기는 단순한 전설이라기보다, 이 땅이 지닌 의미를 설명하려는 상징적 서사로 읽힌다. 척박한 환경 속에서도 미래를 기약하며 묘를 썼다는 이야기는, 왕조의 시작을 ‘우연’이 아닌 ‘필연’으로 재해석하려는 시도의 일환이었을 것이다.


자연 속에서 사유가 깊어지는 공간, 죽서루


관동팔경 가운데 하나인 죽서루는 절벽 위에 세워진 누각으로, 동해를 향해 열린 장대한 풍광을 자랑한다. 그러나 이곳의 가치는 단순한 절경에 머물지 않는다. 이곳은 조선 선비들에게 자연과 인간, 그리고 정치적 존재로서의 자신을 함께 성찰하는 공간이었다.

정철은 이 일대를 유람하며 《관동별곡》을 남겼고, 그 속에서 절경을 노래하는 동시에 임금에 대한 충정을 드러냈다. 정조 역시 화원 김홍도에게 이곳의 풍경을 그리게 하며 그 가치를 재확인했다. 강릉 출신의 사상가 이이 또한 직접 방문 여부는 분명치 않지만, 관련 시를 통해 이 공간을 사유의 대상으로 삼았다.


기원과 해석 사이, 삼척이라는 공간


삼척은 단순히 왕조의 시작을 말해주는 곳이 아니다. 이곳은 떠남의 결단과, 그 결단을 되돌아보는 성찰이 함께 존재하는 공간이다.

준경묘가 “어디에서 시작되었는가”를 묻는 장소라면, 죽서루는 “그 시작을 어떻게 이해할 것인가”를 묻는 공간이다. 하나는 기원을, 다른 하나는 해석을 상징한다.


강릉에서 삼척으로 이어지는 길은 짧지만, 그 안에는 한 가문의 생존을 건 이동과, 그 이후 수백 년 동안 이어진 사유의 시간이 겹겹이 쌓여 있다. 오늘 우리가 이곳을 찾는 이유는 어쩌면 그 오래된 질문—안주할 것인가, 떠날 것인가—를 다시 마주하기 위해서일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