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자의 끈기, 딸기의 혁신: 강릉이 빚어낸 달콤한 변화

함영일 박사와 청년농부

by Clara Shin

강릉을 찾은 이들은 종종 예상 밖의 풍경과 마주한다. 푸른 바다를 떠올리며 도착했지만, 예상외로 넓은 논밭이 먼저 눈에 들어오기 때문이다. 이 낯설면서도 평온한 장면 앞에서 문득 질문이 떠오른다. 강릉을 대표하는 작물을 하나만 꼽으라면 무엇일까. 많은 이들이 망설임 없이 ‘감자’를 떠올릴 것이다. 강릉의 땅은 묵묵히 버텨온 감자의 시간과, 상식을 깨온 딸기의 시간을 함께 품고 있다.


지겨운 구황작물에서 자부심의 상징으로


감자는 오랫동안 강원도의 상징이었다. 그러나 그 상징은 언제나 자부심만으로 채워진 것은 아니었다. 배고팠던 시절을 견디게 해준 고마운 존재였지만, 동시에 척박한 땅과 더딘 발전을 떠올리게 하는 이미지이기도 했다. 그래서인지 기성세대에게 감자는 때로는 고마움과 함께, 쉽게 드러내고 싶지 않은 투박한 기억으로 남아 있기도 하다.


독일에서는 감자가 하나의 문화이자 커다란 자부심이다. 독일에는 ‘감자 대왕’이라 불리는 프리드리히 2세에 관한 흥미로운 일화가 전해진다. 그는 전쟁과 흉년으로 고통받던 백성들을 구하기 위해 감자 재배를 장려했으나, 농민들은 “개도 먹지 않는 것”이라며 거부했다. 이에 그는 감자를 ‘왕실 작물’로 지정하고 경비병을 세워 접근을 막는 기지를 발휘했다. 사람들의 호기심은 오히려 커졌고, 몰래 가져다 심기 시작한 감자는 독일 전역의 주식이 되었다. 지금도 독일인들은 그의 무덤에 꽃 대신 감자를 올려놓으며 고마움을 표한다.


이 이야기는 감자가 단순한 작물이 아니라, 한 사회의 생존과 기억을 함께한 존재임을 보여준다. 우리 강릉의 감자 역시 충분히 그런 자부심의 대상이 될 수 있다. 그 변화의 중심에는 대관령의 거친 바람을 견디며 평생 감자 연구에 헌신한 함영일 박사님의 집념이 있다. 씨감자 국산화를 이뤄낸 그의 노력은 감자를 ‘어쩔 수 없이 먹던 작물’에서 ‘스스로 선택해 찾는 명품’으로 바꾸어 놓았다. 이제 감자는 투박한 뿌리식물을 넘어, 건강을 중시하는 시대에 가장 세련된 웰빙 식재료로 다시 태어나고 있다.


상식을 깬 혁신, 강릉의 ‘여름 딸기’


감자가 전통의 재발견이라면, 강릉 농업의 또 다른 축은 상식을 깨는 혁신에서 비롯된다. 그 대표적인 사례가 바로 ‘여름 딸기’다. 딸기는 겨울과 봄의 과일이며, 따뜻한 평야 지대의 전유물이라는 고정관념을 누군가 뒤집은 것이다. 대관령 일대의 서늘한 기후를 역으로 활용해 한여름에 수확하는 고랭지 딸기를 만들어낸 도전은 눈부시다.


더 나아가 이 딸기는 첨단 스마트팜 시스템 속에서 재배된다. 데이터로 온습도와 빛을 정밀하게 제어하는 이 공간에서 농업은 이제 지식 산업으로 확장되었다. 지역의 조건을 약점이 아닌 강점으로 전환한 이 빨간 보석은 해외로 수출되며 강릉 농업의 새로운 얼굴이 되었다.


힐링의 땅, 강릉에서 만나는 생명의 경이로움


강릉의 땅은 이처럼 서로 다른 두 개의 시간을 품고 있다. 묵묵히 버텨온 감자의 시간과, 끊임없이 경계를 넘어서려는 딸기의 시간이다. 하나는 과거의 기억을 품고 있고, 다른 하나는 미래를 향해 나아간다. 하지만 이 둘은 결국 같은 땅 위에서 하나의 이야기로 이어진다.


또한 이 이질적인 두 시간은 결국 '사람'이라는 하나의 매듭으로 묶인다. 흙을 신성시하며 평생을 바친 연구자의 고집스러운 끈기와, 기존의 틀을 깨고 새로운 가능성에 뛰어든 이의 도전은 본질적으로 맞닿아 있기 때문이다. 과거의 생존을 지켜낸 것도, 미래의 풍요를 창조하는 것도 결국 사람의 의지다. 시대에 따라 작물은 변하고 기술은 진화하지만, 그 바탕에 흐르는 뜨거운 노력과 집념은 같은 땅 위에서 하나의 위대한 이야기로 이어진다.


이곳에서의 경험은 단순히 먹는 것을 넘어선다. 아이들과 함께 흙을 만지며 감자를 캐고, 스마트팜에서 딸기를 따보는 체험을 미리 준비해 보길 권한다. 호미 끝에 걸린 감자알의 묵직함과 보석처럼 빛나는 딸기를 직접 수확하는 순간은, 아이들에게 자연의 고마움과 혁신의 가치를 동시에 일깨워주는 최고의 교육이 될 것이다.


감자의 끈기와 딸기의 혁신이 만나는 곳. 강릉은 이제 과거의 기억과 미래의 가능성이 동시에 살아 숨 쉬는 공간이다. 가장 촌스러우면서도 가장 첨단인 이 건강한 생명력이 강릉의 새로운 마스코트가 되길 희망한다. 자연과 기술이 조화를 이룬 강릉의 식탁에서, 한 지역이 스스로를 어떻게 새롭게 정의해 나가는지 그 생생한 변화를 꼭 한번 느껴보시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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