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것을 섞어 문화를 빚는 도시 ‘강릉‘

블랜딩의 미학, 커피, 이제 또 등장할 커피는?

by Clara Shin

강릉 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상품은 단연 강릉커피다. 이제 우리에게 친숙한 서울우유처럼, 강릉커피는 그 자체로 하나의 고유명사가 되었다. 커피 한 알 나지 않는 이 낯선 도시가 어떻게 커피의 성지가 되었을까. 그 비밀은 한 장인의 고집스러운 장인정신과 이를 산업으로 일궈낸 창의적 비즈니스, 그리고 무엇이든 섞어 새로운 가치를 창조해내는 강릉 특유의 융합 능력에 있다.


장인의 고집, ‘보헤미안’의 탄생


강릉 커피 역사의 서막은 1세대 바리스타 박이추 선생으로부터 시작된다. 일본에서 커피를 배운 그가 굳이 연고도 없는 강릉의 한적한 바닷가에 자리를 잡은 이유는 단순하면서도 명확했다. 오직 커피 맛에만 집중할 수 있는 환경, 그리고 그 맛을 아는 이들과 조용히 교감하기 위해서였다.

그가 지은 이름 ‘보헤미안(Bohemian)’에는 자유로운 영혼으로 살며 오직 커피라는 본질에만 천착하겠다는 그의 철학이 담겨 있다. 그는 여러 국가의 원두를 한 잔에 섞는 ‘블렌딩’을 통해 커피에 이야기를 담기 시작했다. 그의 손끝에서 탄생한 하우스 블렌드는 강릉을 ‘맛있는 커피를 마시기 위해 찾아가야 하는 도시’로 각인시켰다.


‘테라로사’, 커피를 산업과 예술로 스케일업하다


박이추 선생이 뿌린 장인정신의 씨앗은 테라로사(Terarosa)를 통해 거대한 숲을 이루었다. 김용덕 대표는 직접 전 세계 커피 산지를 발을 누비며 좋은 원두를 직접 공수해오는 ‘다이렉트 트레이드’를 개척했다. 그는 비옥한 붉은 토양을 뜻하는 이름처럼, 커피의 근원인 생두의 품질에 집착했다.

테라로사는 고급스러운 블렌딩 커피를 대중화시켰을 뿐만 아니라, 건축과 문화를 커피에 섞어 넣었다. 강릉의 척박한 공장 부지를 미학적인 공간으로 탈바꿈시키며 전국적인 유명세를 이끌어냈고, 이는 강릉이 단순한 관광지를 넘어 ‘커피 브랜드 도시’로 도약하는 결정적인 계기가 되었다.


자판기 헤이즐넛에서 감자 커피까지, ‘섞음’의 미학


사실 강릉 커피의 원초적인 뿌리는 안목해변의 자판기 헤이즐넛 커피에 있다. 누군가에게는 들키고 싶지 않은 비밀스러운 데이트의 동반자였고, 누군가에게는 파도 소리와 함께 즐기던 낭만 그 자체였다. 그 시절 자판기 커피 맛을 잊지 못하는 강릉 사람들의 정서는 오늘날 강릉을 ‘모든 것을 섞는 도시’로 진화시켰다.

이제 강릉의 바리스타들은 원두를 섞는 데 그치지 않는다. 줄을 서서 40분을 기다려야 겨우 맛을 볼 수 있는 툇마루의 흑임자 커피부터 순두부 커피, 팥 커피, 초당옥수수 커피, 심지어 강원의 상징인 감자 커피까지 등장했다. 투박한 감자가 첨단 로스팅 기술과 바리스타의 수백 번에 걸친 실험, 그리고 세련된 브랜딩을 거쳐 명품 커피로 재탄생한 것이다.


맺으며: 강릉 국제 커피 페스티벌로의 초대

강릉은 이제 전 세계의 커피와 지역의 숨결, 그리고 사람들의 이야기까지 한 잔에 블렌딩해내는 거대한 실험실이다. 장인이 닦아놓은 길 위에서 수많은 바리스타가 저마다의 창의성을 발휘하며 도시 전체가 향기로운 덕을 보고 있다.

이 역동적인 블렌딩의 현장을 직접 확인하고 싶다면, 매년 열리는 강릉 국제 커피 페스티벌에 꼭 방문해 보시길 권한다. 그곳에는 단순히 커피 한 잔이 아닌, 강릉이 지난 수십 년간 섞어온 열정과 낭만, 그리고 미래가 담겨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