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학전문대학원 제도의 도입: 법률서비스의 공공성 회복과 개혁의 리더십
요즘은 우리 사회에서 법조인이 담당하는 역할의 중요성에 대해 실감하게 된다. 2009년, 대한민국 사법제도에 커다란 전환점이 생겼다. 오랜 논란 끝에 ‘법학전문대학원(로스쿨) 제도’가 도입된 것이다. 이 제도는 단순히 법조인 양성 방식을 바꾼 것에 그치지 않고, 한국 사회의 특권 구조와 법률 접근성을 재편하려는 사법개혁의 실질적 시도였다. 특히 중요한 점은, 이 제도가 사회적 반발과 이해관계를 넘어서 추진되었고, 결과적으로 법률서비스를 공공의 영역으로 되돌리는 데 큰 기여를 했다는 점이다.
당시 정부가 밝힌 로스쿨 제도의 도입 목적은 사법시험 중심의 선발 시스템이 양산한 ‘고시 낭인’ 문제를 해소하고, 특정 대학·전공에 치우친 법조계의 획일성을 깨며, 다양한 배경과 전문성을 갖춘 법조인을 양성하겠다는 것이었다. 이는 단지 교육 정책이 아닌, 사회 구조의 공정성과 다양성을 실현하기 위한 법조계 개혁이었다.
하지만 이 제도가 자리 잡기까지의 길은 결코 순탄하지 않았다. 로스쿨 제도는 이미 1995년 김영삼 정부에서 세계화 추진과 사법개혁의 일환으로 처음 논의되었으며, 김대중 정부에서도 사법시험 폐지를 포함한 개혁 논의가 있었다. 그러나 사시 출신 정치인과 법조계 기득권의 강한 반발에 부딪혀 번번이 무산됐다.
이런 상황에서 노무현 정부는 2005년 사법제도개혁추진위원회를 출범시키고, 같은 해 10월 ‘법학전문대학원 설치·운영에 관한 법률안’을 국회에 제출하면서 본격적인 도입을 추진했다. 법안은 한나라당이 사학법 재개정 문제와 연계하며 법안심사소위 의결을 보류하는 등 정쟁 속에 가로막혔으나, 2007년 국회의장의 직권상정으로 통과되었다.
노무현 대통령의 결단도 주목할 만하다. 그는 대학을 졸업하지 않았지만 사법시험에 합격해 법조인이 된 인물로, 누구보다 사법시험의 상징성과 기능을 잘 알고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자신의 경험을 넘어 한국 사회의 구조적 개혁과 미래 세대를 위한 제도 개선에 방점을 찍었다. 당시 중산층 이상의 가정이 아니면 접근하기 어려운 고비용 시험 구조, 엘리트 중심의 법률서비스, 지역과 계층의 장벽을 허무는 데에 초점을 맞춘 개혁이었다고 평가받는다.
2009년부터 시행된 로스쿨 제도는 전국 20개 대학에 설치되어 있으며, 총 입학정원 2,000명으로 제한된 가운데 매년 약 2,000여 명의 졸업생을 배출하고 있다. 변시합격률에 영향을 받을 수 있으나 이는 과거 연 1,000명 수준이던 변호사 수의 두 배에 달하며, 법률 서비스의 진입장벽을 낮추는 데 실질적인 효과를 내고 있다.
더불어, 2018년 시행령 개정으로 특별전형으로 정원의 7%를 사회적 취약계층에게 할당하게 되면서, 매년 최소 140명 이상이 그 기회를 얻고 있으며, 2020년에는 165명이 해당 전형을 통해 로스쿨에 입학했다. 지역인재 전형도 병행되어, 수도권 중심의 법조계 구조를 완화하고 지역 균형 발전에 기여하고자 하였다. 이러한 구조는 법학전문대학원의 장학금 제도, 학자금 대출, 입시 및 지원 현황의 공개와 함께 운영되어 공공성과 형평성을 동시에 지향하고 있다.
물론, 로스쿨 제도가 완벽한 것은 아니다. 변호사 수 증가에 따른 시장 포화와 서비스 질 저하에 대한 우려는 꾸준히 제기되고 있으며, 변호사 단체는 정원 감축을 요구하고 있다. 그러나 이는 제도의 성과가 현실에서 체감되고 있다는 또 다른 방증일 수 있다. 법률 서비스가 소수 특권계층의 전유물이 아니라, 모든 국민이 접근 가능한 공공재로 자리 잡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최근의 의과대학 정원 확대를 둘러싼 정부와 의사단체 간 갈등을 보며, 당시 로스쿨 도입 과정의 어려움과 그 의미가 더욱 절실하게 다가온다. 법학전문대학원 제도는 여전히 조정과 개선이 필요한 상태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그 제도가 출발했던 철학과 방향성이다. 그것은 바로 ‘법은 특권이 아니라, 모든 사람의 권리이며, 정의는 출신과 배경에 관계없이 보장되어야 한다’는 이상이었다. 이제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그 이상이 제도의 지속가능성과 함께 현실 속에서 더 깊이 뿌리내릴 수 있도록 하는 지속적인 관심과 노력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