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대별 주요 교육정책 요약
2025년, 대한민국은 광복 80주년을 맞는다. 그동안 한국이 이룬 경제적 성장과 사회적 진보는 국제사회가 주목하는 사례로 자리매김했으며, 그 이면에는 교육에 대한 전방위적 투자와 정책적 선택이 자리하고 있었다. 전후 피폐한 상황에서도 교육을 국가 재건의 수단으로 삼았고, 그 선택은 단지 인적자원의 축적을 넘어서 민주주의와 사회이동성을 촉진한 결정적 요인이 되었다. 1960년 당시 월드뱅크로부터 차관 지원을 거부당할 정도로 장래성이 없다는 평가를 받았던 한국이 오늘날 선진국의 반열에 오르기까지, 교육정책은 그 흐름을 이끈 중요한 동력이었다.
광복 직후 한국은 극심한 경제적 어려움과 전쟁의 상처 속에서도 초등의무교육을 실현하기 위해 국가의 모든 교육예산과 행정력을 집중하였다. 1959년, 취학률 95% 달성은 여아 취학률에서도 세계적으로 북미 국가 다음으로 높은 수준을 기록하는 성과였다. 이는 단지 수치상의 성취가 아니라, 농지개혁을 통해 학교용지 확보를 용이하게 한 점, 사회 전반의 교육 접근성을 향상시킨 점에서 한국 교육의 방향성을 보여준다. 이 시기 대학도 다수 설립되어 고등교육 취학률은 당시 선진국 수준에 육박했고, 대학생들은 4.19 혁명의 주도 세력이 되어 민주주의의 싹을 틔웠다. 1공화국 시기 2만여 명이 넘는 대학생·연수생들이 선진국에서 학문과 기술을 익혀 돌아와 제3공화국 시기 각종 연구기관 설립과 기술 발전의 선구자가 되었다.
박정희 정권은 교육을 국가산업구조 재편의 핵심 수단으로 삼았다. 중학교 입시에 과열된 과외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무시험 입학제도를 도입하고, 사립학교에도 교사 인건비와 운영비를 지원해 공립과 사립 간의 질적 차이를 해소하고자 했다. 중고등학교 평준화 정책은 세계적으로도 드문 매우 급진적인 교육적 시도였다. 산업사회로의 전환을 위해 특성화고를 지원하고, 여공들의 공부하고자 하는 열망를 받아들여 산업체 부설학교가 설립되었고 방송통신중, 고를 설립하였다. 서울의 대학 정원을 억제하는 동시에 지역 국립대에 대한 예산 지원과 정원 확대를 통해 지역 교육 기회를 늘리는 정책도 추진되었다. 한국과학기술원(KAIST) 설립과 국립대학의 지역 산업 연계도 이 시기 이루어졌다. 이러한 정책들은 서울에 집중된 교육기회를 분산시키고, 지역 발전과 기술 인재 양성을 병행한 다층적 성과를 가져왔다.
박정희 정권 말기 중등교육 취학률은 80%에 근접했지만, 고등교육 취학률은 7%에 불과해 대학입시에 대한 경쟁이 심화되었다. 이로 인해 과외 부담이 심각한 사회문제가 되었고, 1980년 쿠데타로 등장한 신군부는 국민 지지를 얻기 위한 수단으로 대대적인 교육조치를 단행하게 되었다. 졸업정원제를 도입해 대학 정원을 1년 만에 50%나 확대하고, 대학본고사를 폐지하여 과외의 원인을 제거하고자 하였다. 고등학교별 성적 차이를 무시하고 내신을 동일 기준으로 반영하고 주요 대학의 내신 반영 비율을 기존 5%에서 50%로 끌어올렸다. 동시에 대학 내 장학금을 확대하여 경제적으로 어려운 학생들의 학업을 지원하였다. 이러한 조치들은 중산층 이하, 지방 출신, 여학생 등 다양한 계층의 고등교육 진입을 확대하게 하였고, 고등교육 취학률은 8%에서 30%대로 크게 증가하였다. 이 세대는 이후 산업화와 수출확대를 견인한 인재 집단이 되었고, 교육을 통한 사회이동이 활발했던 대표적인 시기로 평가된다. 평준화 정책의 부작용으로 지적된 획일화를 보완하고 기술경쟁에 필수적인 과학인재양성을 위해 과학고가 설립되었고, 실용직업인을 양성하는 전문대학도 대폭 확대되었다.
문민정부로의 전환 이후 김영삼 정부는 교육개혁위원회를 설치하고 5.31 교육개혁을 통해 교육에 대한 정부 통제를 줄이고 자율성과 다양성을 강조하였다. 대학 자율화를 통해 경쟁체제를 도입하고, 교육재정은 GDP의 5% 수준으로 확대되었다. 성과에 기반한 대학 재정지원 시스템이 시작되어 대학 간 경쟁이 본격화되었고, 이는 고등교육의 질 향상에 기여했다.
김대중·노무현 정부는 5.31 교육개혁의 기조를 계승하면서 학생 중심의 교육과 사교육 완화를 위한 정책을 추진하였다. Brain Korea 21과 같은 고등교육 재정지원사업은 세계 수준의 대학 육성을 목표로 했고, 초·중·고교 교실에 인터넷을 보급하며 정보화 교육이 전면화되었다. 방과후 학교와 교육복지투자우선사업은 교육격차 해소를 목표로 했으며, Study Korea 정책을 통해 유학생 유치도 적극 추진되어 대학의 국제화가 진전되었다. 이 시기에 시작된 정책의 성과는 2024년 기준 QS 세계대학순위 상위 100위권에 5개, 200위권에 7개 대학이 포함되는 결과로 이어졌고, 한국의 IT 경쟁력 강화에도 큰 기여를 하였다.
이명박·박근혜 정부 시기에는 마이스터고 도입, 특성화고 확대 등을 통해 첨단 기술분야의 맞춤형 인재 양성이 본격화되었고, 한국장학재단 설립과 국가장학금, 취업후 상환 학자금 대출제도는 고등교육의 접근성을 크게 개선하였다. 신성장동력산업(방송, 바이오, 우주, 신약 등)과 연계한 인력양성정책도 추진되어 성과를 누적해 나갔고, 자유학기제 도입은 학생의 진로탐색과 창의력 향상을 위한 행복교육으로의 전환을 꾀하였다. 대학구조개혁 및 미래산업 중심의 학과 조정 정책도 진행되었다.
문재인 정부는 고등학교 무상교육을 전면 시행하였고, 디지털 첨단산업 분야 공유대학 사업 등 협력 중심의 고등교육 혁신정책을 추진하였다. 이는 디지털 전환기 한국이 직면한 산업 구조와 교육 수요를 연결하는 실질적인 대응이었다.
이처럼 한국의 교육은 교육기회의 형평성을 중심으로 두고 필요한 인적, 인프라 구축을 농어촌지역을 포함하여 전국적으로 실행하였고, 사회구조 변화와 경제전략에 맞추어 조정되며 발전해왔다. 실패한 정책도 있었고 성공한 정책도 있었다. 국민들은 교육의 형평성에 민감하고, 사회경제적 배경에 따른 교육격차를 불평등으로 인식하는 경향이 크며, 기여입학제도나 비교과 중심 입시제도는 강한 저항에 부딪힌다.
또한 사회발전과 더불어 청소년 우울증, 선행학습 과열, 교육기회 격차, 학교폭력 등 새로운 문제가 대두되고 있고 이제는 경쟁을 넘어 ‘행복한 인재’를 육성해야 한다는 자성의 목소리도 힘을 얻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국이 이룩한 교육 성취는 전 세계 개발도상국들이 주목하는 정책 자산이 되었다. 짧은 시간 안에 보편교육을 달성하고, 교육을 통해 민주화와 산업화를 동시에 추구한 경험은 세계사적 맥락에서도 매우 이례적이며, 한국은 더 이상 교육수혜국이 아니라 교육협력 파트너국으로서 국제사회에서 역할을 확대해야 할 시점에 있다.
광복 80년을 맞이한 오늘, 그동안 이어져온 교육정책의 흐름 속에는 어느 나라 정부도 쉽게 시도하지 못했던 과감한 투자와 전 국민을 위한 공정한 교육 시스템을 만들기 위한 치열한 노력이 있었음을 기억해본다. 이 귀중한 교육적 자산이 시대의 흐름 속에 잊혀지지 않기를 바라며, 우리의 과거를 정확히 인식하는 것이 새로운 교육의 길을 설계하는 데 도움이 될 것으로 믿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