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복을 찾도록 기다려주는 사회
약 13년 전 여류 작가의 『덴마크 사람들처럼』이라는 책을 읽었을 때, 그것은 내게 신선한 충격으로 다가왔다. 대부분의 작가들이 자신이 속한 사회를 비판적으로 바라보는 데 익숙하지만, 이 작가는 달랐다. 그녀는 자신의 나라가 마음에 든다고, 그리고 그 이유가 무엇인지 담담하게 설명하고 있었다. 그것은 자부심의 과시가 아니라, 사람들이 자신이 선택을 신뢰하며 살아가는 사회에 대한 따뜻한 기록이었다.
그 책이 세상에 나온 지 13년이 지났지만, 한국은 여전히 세계 행복지수에서 낮은 순위에 머물러 있다. 객관적으로 보자면 우리의 사회는 과거보다 훨씬 좋아졌다. 경제적 여건도 안정되었고, 교육 수준도 높아졌으며, 시민의식도 성숙해졌다. 그러나 유독 행복만은 여전히 멀게 느껴진다. 그렇다면 우리는 어디에서부터 다시 시작해야 할까. 덴마크가 우리 사회에 던지는 질문은 어쩌면 그 지점에서 출발한다.
덴마크의 행복은 제도보다 사람에게서 비롯된다. 그 사회는 모든 사람을 존중하는 문화 위에 서 있다. 서로를 믿는다는 말은 자신에 대한 자존감이 높고, 또한 한 사람 한 사람이 중요한 존재로 대접받는다는 뜻이다. 그곳에서는 어떤 일을 하든, 그 일이 사회를 움직이는 소중한 일로 인정받는다. 식당의 종업원도, 교사도, 정치인도 각자의 자리를 지키는 일에서 자부심을 느낀다. 그런 사회에서는 직업이 인간의 가치를 결정하지 않는다.
그곳의 거리에서 내가 받은 인상은 단순하지만 강렬했다. 식당의 종업원은 자신의 일에 당당했고, 어린이집 앞에는 유모차에 잠든 아기들이 아무도 지켜보지 않아도 안전했다. 유치원에서는 아이들이 하루 종일 숲 속에서 뛰어놀았고, 국회의원들은 자전거로 출근하며 권위를 내세우지 않았다. 모든 일은 누군가의 삶을 지탱하는 중요한 일이라는 믿음이 사회 전반에 깔려 있었다. 그것이 진짜 복지국가의 풍경이었다.
무엇보다 마음에 남은 것은 아이들에 대한 기대였다. 덴마크의 부모는 아이가 스스로 행복을 찾을 수 있도록기다려주며, 아이가 선택한 길을 존중한다.덴마크의 부모들은 자신의 이루지 못한 꿈을 자녀에게 투영하지 않는다. 아이가 어떤 길을 가든, 스스로 만족하며 살아간다면 그것으로 충분하다고 생각한다.
부모의 기대가 높을수록, 아이는 그 기대를 충족하지 못했을 때 스스로를 실패자로 느낀다. 또한 더 심각한 것은, 아이들이 부모가 자신에게 가진 기대를 자신의 것으로 내면화할 경우다. 이때 아이는 굳이 부모가 재촉하지 않더라도, 그것이 자신이 세운 목표라고, 자신이 좋아하는 일이라고 믿는다. 그러나 그 목적에 도달하지 못했을 때, 아이는 깊은 좌절감과 자기혐오 속에서 불행해진다.
행복은 객관적인 성취에서 오기도 하지만 또한 기대와 현실의 간격이 좁혀질 때 찾아오는 감정이다. 행복이 중요한 목표가 된다면 교육의 무적정 높은 기준을 유도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정체성에 대해 더 깊이 고민할 수 있는 기회를 주는 것, 스스로를 객관작으로 들여다 보고 스스로의 목표를 세우는 일을 도와주는일이 되어야 한다.
한국의 교육은 오랫동안 국가 발전의 원동력이 되어왔다. 하지만 이제는 ‘얼마나 더 잘할 것인가’보다 ‘즐겁게 하고 있는지’를 묻는 교육으로 바꿔야할 시점이지 않을까? 경쟁을 통해 소수를 뽑아내는 체제가 아니라, 다수가 자신답게 살아갈 수 있도록 돕는 제도여야 한다 . 이를 위해 자신의 자녀 교육에서 남을 이기기 위해 막대한 사교육비를 쏟아붓는 것을 어쩔 수 없는 일 아닌가? 하고 인정하는 일이 바람직한가를 생각해 봐야 하지 않을까? 자신이 속한 집단의 지위를 대물림하기 위한 교육적 투자를 당연하게 여기는 한, 우리는 행복국가로 가기 어렵다.
“자식농사 잘 지었네.” 이런 말이 칭찬으로 통용되는 문화 또한 바뀌어야 한다. 사회의 기준으로 보아 성공했든 실패했든, 모든 아이는 그 존재만으로 소중하다.
한국은 세계에서 가장 빠르게 발전한 나라다. 교육열과학업성취도, 기술력, 문화적 성취 모두가 세계적 수준이다. 그러나 정작 우리는 스스로 행복하다고 느끼지 못한다. 비교와 기대 수준이 낮아진다면 한국은 충분히행복할 만하다. 한국에 태어난 것만으로 우리는 엄청난 행운을 가지고 태어났고 여러 면에서 한국보다 더 살기 좋은 국가는 이제 그렇게 많지 않다.
이제 필요한 것은 ‘행복을 느낄 수 있는 마음의 여유’, 그리고 ‘행복을 찾을 수 있도록 기다려주는 사회적 감수성’이다. 행복은 가르치는 것이 아니라, 찾도록 느낄 수 있도록 도와주는 것이다. 아이들이 자기 삶을 스스로 선택하고, 그 선택이 존중받는 사회—그것이 우리가 만들어가야 할 한국 교육을 바꾸는 시작이 되었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