치킨과 칩, 혁신의 나라

삼성, 현대, 엔비디아 CEO의 만남

by Clara Shin

한국 사람들은 흔히 한국 교육이 비판적이지 못하고 창의성이 부족한 학생들을 길러낸다고 비판한다. 그러나 역설적으로, 바로 그 교육을 받은 이들이야말로 오늘날 한국 사회에서 가장 비판적이고 날카로운 시민으로 성장했다는 점은 흥미로운 모순이다. 이 역설은 지금의 한국 경제에도 그대로 투영된다. 불과 얼마 전까지만 해도 ‘재벌’이라는 말은 불평등과 부패의 상징이었고, 그 총수들은 뇌물과 권력형 비리로 감옥에 가는 일이 다반사였다. 그러나 올해 APEC 정상회의 기간 중 경주를 찾은 엔비디아의 젠슨 황 회장이 삼성의 이재용 회장, 현대의 정의선 회장과 만난 장면은 완전히 다른 시대의 공기를 보여주었다. 그는 놀라울 만큼 겸손하고 애정 어린 태도로 한국인과 소통했고, 치킨과 맥주를 나누며 웃음을 보였다. 그리고 “우리 회사가 처음 반도체를 공급받은 곳이 삼성이며, 엔비디아의 첫 고객이 된 나라도 한국이었다”라고 회상하며 한국과의 깊은 인연을 이야기했다. 나아가 고(故) 이건희 회장이 남긴 편지를 직접 낭독하면서 “한국이 컴퓨터를 가장 잘 다루는 국민이 되도록 만들겠다”는 다짐과, e스포츠를 응원하겠다는 이건희 전 회장의 메시지를 전해주었다. 황 회장의 한국에 대한 찬사는 다소 과장되어 보일 만큼 뜨거웠고, 그로 인해 한국의 투자자와 시민들은 오랜만에 진심 어린 자부심을 느꼈을 것이다.


이번 방문에서 엔비디아는 총 26만 개의 AI GPU를 한국에 공급하겠다고 발표했다. 이 가운데 약 5만 개는 정부 연구 프로젝트용, 5만 개씩은 삼성과 현대, 그리고 SK에, 나머지 6만 개는 네이버 등 주요 디지털 기업에 제공될 예정이라고 보도된다. 황 회장은 “한국이 아시아의 AI 중심국가가 될 것”이라고 선언하며 단순한 반도체 판매를 넘어 기술 협력의 비전을 제시했다. 삼성은 이 GPU를 활용해 ‘AI 메가팩토리’를 구축하고, 반도체 생산 공정에 인공지능을 접목한 디지털 트윈 시스템과 로봇 자동화를 추진할 계획이다. 현대는 자율주행, 스마트 모빌리티, 로봇공학 등 차세대 기술 개발에 GPU를 적극 활용하기로 했다. 두 기업 모두 이번 협력을 통해 단순한 제조업체에서 벗어나 AI 기반 첨단산업 기업으로 변신하려 하고 있다. 이러한 변화는 중소 협력업체와 스타트업의 투자 활성화로 이어지며 한국 산업 생태계 전반을 움직일 것으로 기대된다.


이재용 회장이 젠슨 황 회장과 ‘친구’라 호칭하며 소탈하게 대화하고 대중과 소통하는 모습을 보며 격세지감을 느낀다. 권위와 거리감이 지배하던 재계의 세계에서 보기 드문 장면이었고, 한국 사회의 기업 리더십이 변화하고 있음을 보여주었다. 불과 몇 년 전만 해도 재벌은 불신과 비난의 대상이었지만, 지금의 젊은 세대, 특히 주식과 기술을 통해 기업 성장의 성과를 체감하는 세대에게 그들은 점차 ‘유능한 리더’로 인식되고 있다. 최근 노벨경제학상 수상자가 한국의 ‘재벌 구조’를 혁신의 걸림돌로 지적하며 중진국의 함정에 빠질 위험을 경고했지만, 이번 삼성과 현대, 엔비디아의 협력은 그 비판이 이미 낡은 시각에 지나지 않을 수 있음을 보여준다. 삼성과 현대, LG, SK 등 대기업들은 오히려 한국 경제의 혁신을 선도하며, 대규모 투자를 통해 사회의 일자리를 창출하고 있다. 일부 경제학자들은 재벌 구조의 문제를 인정하면서도, 단일 기업보다 실패를 두려워하지 않고 과감히 첨단기술에 투자할 수 있는 자금력과 연구력을 재벌이 보유하고 있음을 지적해 왔다.


현재의 재벌 3세대들은 과거 식민지시대와 전쟁을 겪은 1,2 세대와 다르다. 평준화된 중고등학교에서 공부하였고 일반인보다는 훨씬 좋은 여건에서 공부하였겠지만 어찌하였든 스스로 공부해 국내 명문대학에 진학했고, 이후 해외 유학을 통해 세계의 기술과 인맥을 직접 체득했다. 미국에서 석박사 과정을 밟으며 글로벌 인사들과 교류했고, 영어로 자유롭게 소통하며 세계 무대에서 자연스럽게 활동하고 있다. 그들은 이전 세대보다 겸손하고 실용적이며, 대중과의 소통에도 능하다. 이러한 세대교체는 한국의 경제 리더십에 새로운 신뢰를 불어넣고 있으며, 황 회장의 이번 방문은 재벌 3세대에 대한 국민적 인식을 바꾸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한 것으로 보인다.


또한 이번 젠슨 황의 방문은 단순한 칩 공급 계약이 아니라 한국 경제의 혁신의 모습을 예고하였다. 아니, 이미 진행되고 있는 변화를 국민들에게 인식시키는 중요한 계기가 되었다. 엔비디아의 기술력, 삼성과 현대의 제조 및 자본력, 그리고 한국인의 교육과 디지털 역량이 결합되면서 한국은 이제 AI 시대의 주도적 국가로 부상하고 있다. 한국이 AI 3대 강국으로 성장해 자국의 ‘소버린 AI’를 구축하고, 그 성과를 국민 모두가 함께 나누는 시대가 머지않아 올지도 모른다. 그러나 이러한 성장이 지속되기 위해서는 대기업의 독주가 아닌, 중소기업과 창업기업이 함께 성장할 수 있는 생태계를 구축하는 일이 무엇보다 중요할 것이다. 정부는 이를 촉진하는 제도적 틀을 마련해야 하며, 대기업은 기술과 자본을 개방하여 파트너십의 생태계를 만드는데 기여하여야 한다. 혁신의 성과가 소수의 대기업에 집중되지 않고, 수많은 창의적 기업과 청년 창업가들에게 확산될 때, 한국은 진정으로 지속가능한 AI 강국으로 자리 잡을 것이다. 또한 경제의 성장과 함께 정치의 균형, 사회의 형평성이 조화를 이루는 나라, 기술이 인간의 삶을 풍요롭게 하고 그 안에서 행복을 누릴 수 있는 그런 한국이 되었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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