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부는 큰아들만”

1950, 60년대 한국가정의 보편적 선택

by Clara Shin

며칠 전 교육부 업무보고 자리에서 대통령이 서울대와 다른 국립대의 재정지원 현황을 점검하는 과정에서 뜻밖의 ‘옛날이야기’가 등장했다. 산업화 초기, 집안 형편이 어려우면 큰아들 하나에만 교육을 몰아주고, 둘째부터는 공부를 포기하게 했으며, 딸들은 일찌감치 식모로 보내던 시절의 이야기였다. 이제까지처럼 ‘큰아들 몰빵’이 당연한 선택일 수는 없다는 취지였다.


우리 친정아버지의 이야기도 그렇다. 1942년생인 아버지는 초등학교만 졸업하셨다. 당시 집안은 시골에서 제법 살림이 나았다고 짐작되지만, 할아버지는 “공부는 큰아들만 시키면 된다”라고 판단했다. 그 결정으로 아버지는 중학교 문턱조차 밟지 못했다. 아래 동생들도 사정은 같았다. 반면 큰아버지는 당시 우수한 학생들이 다니던 중·고등학교를 졸업했다. 아버지는 시골에서 농사를 짓고 소를 키우다 군대를 다녀온 뒤, 광주의 양말공장에서 도시 생활을 시작하셨다. 교육의 갈림길은 형제 사이의 삶뿐 아니라 관계까지 바꿔놓았다. 큰아버지 댁과는 어딘가 불편한 거리감이 늘 남아 있었다.


시아버님의 경우도 크게 다르지 않다. 시골의 9남매 중 맏이로 태어나셔서 농업고등학교를 졸업하셨고, 이후 서울에서 일하며 기술을 익힌 뒤 광주에서 사업을 시작하셨다. 그 집안 역시 큰아들 하나를 간신히 교육시킬 수 있는 형편이었다. 이런 풍경이 1950년대 한국의 일상이었고, 1960년대까지도 크게 달라지지 않았을 것이라 짐작된다. 우리가 당연하게 여기는 ‘한국 부모의 교육열’은 사실 그리 오래된 전통이 아니다. 해방후 정부 및 사회각계의 노력으로 1949년 초등학교의무교육 정책이 시행되었고 전쟁후 1959년 초등학생 취학률 95.7%를 달성하며 모든 아동이 초등학교는 나오는 사회가 실현되었다.


1970년 이후, 초등학교를 마치고 중학교에 가지 못했던 수많은 한국의 어머니들은 가정과 섬유공장에서 일하며, 스스로 채우지 못한 배움에 대한 갈증을 마음속에 품었다. 그리고 그 열망은 다음 세대로 옮겨갔다. 자녀만큼은 어떻게든 중·고등학교까지 보내려는 부모 세대가 등장한 것이다. 이 흐름이 가시적인 숫자로 드러난 시점이 중등학교 취학률이 80%를 넘어서던 1980년대 초반이다. 아마 많은 이들이 김희애가 ‘후남이’로 열연하던 드라마를 떠올릴 것이다. 그 드라마는 남아선호사상이 지배적이었던 우리 사회의 자화상이었다.


1980년대 초, 졸업정원제 도입으로 대학 정원이 늘어나면서 변화는 가속화됐다. 4년제 대학의 여학생 비율은 28%에서 34%로 상승했고, 곧 여성의 고등교육 취학률이 50%를 넘어서는 시대가 열렸다. 이 시기를 기점으로 한국 사회 전체, 특히 여성 고등교육 졸업자의 수가 눈에 띄게 증가했다. 지금은 거의 남녀를 불문하고 공부의 의지가 있는 학생은 모두가 대학을 갈 수 있는 세계 몇 안 되는 국가가 되었다.


왜 한국 학부모의 교육열은 이다지 높은가에 대한 질문을 받게 되는 경우가 있다. 이는 민족적인 성향만으로 설명하기 어렵다고 생각한다. 정부 수립 이후 초등교육 의무화, 중학교 입학시험 폐지, 고교 평준화 정책을 통한 교육기회의 구조적 확대가 부모의 인식을 바꾸었다. 정부의 지속적인 교육 투자, 교육 여건 개선, 사회적 배경의 영향력을 최소화하려는 정책들과 경제발전과 연계된 실질적인 사회이동성 확대가 한국인의 교육관을 형성하는 데 결정적 역할을 했다.


얼마 전 동남아시아 한 국가에서 온 교육부 직원들에게 강의할 기회가 있었는데, 그들은 한국의 중·고교 평준화 정책, 교육세를 포함한 법정 교육재정 제도, 교원 정책, 법령에 근거한 과학·수학 진흥 정책에 깊은 관심을 보였다. 그 순간 다시 한번 확신하게 되었다. 정부의 교육정책은 국민의 삶을 실제로 바꾼다.


만약 그런 정책들이 없었다면 우리는 여전히 농촌에서 소를 키우며 살고 있었을지도 모른다. 여성들은 열여덟이 되기도 전에 부모가 정한 집으로 시집가 많은 아이를 낳고 키우는 삶을 살고 있었을 가능성이 크다. 지금도 많은 개발도상국의 농어촌과 여성들의 현실은 여전히 그러하다.


이제 우리는 또 다른 갈림길에 서 있다. 새로운 시대에 걸맞은 새로운 교육정책으로, 한국 사회가 다시 한번 모두가 조금 더 행복하고, 조금 더 편안하게, 세계인과 친구가 되어 살아가는 나라가 되기를 희망해 본다. 교육은 늘 그렇게, 조용히 그러나 확실하게 역사를 바꿔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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