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교육 없는 세상은 불가능한가요?
최근 경기 악화로 중산층의 사교육비 지출마저 줄고 있다는 보도가 있었다. 경제악화가 가계소득에서 거의 필수재가 된 사교육비 감소를 가져오고 있다는 소식이었다, 우리에게도 사교육이 거의 존재하지 않았던 시기가 있었다. 1980년부터 1988년까지다. 당시 정부는 국민의 ‘망국병’이라 불리던 과외 문화를 줄이겠다는 목표 아래 공직자 자녀의 과외를 금지하고, 학원 운영과 프로그램을 강하게 제한했다. 그런데 최근 정부의 업무보고 내용을 보면, 사교육비를 경감하겠다는 정책 목표가 뚜렷하게 보이지 않는다. 사교육비는 서울 집값처럼, 어떤 정책을 내놓아도 결국 줄지 않는다는 체념이 사회 전반에 깔린 듯하다.
우리는 유치원에 들어가면서부터 사교육의 영향권에 놓이고, 대학 입시에 이르기까지 이를 당연한 전제로 받아들인다. 이후 결혼해 아이를 낳으면, 다시 유치원에서 대입까지 약 15년간 사교육을 할지 말지, 얼마나 할지를 고민하게 된다. 개인의 생애 절반 이상이 사교육의 영향을 받는 구조다. 이쯤 되면 사교육은 개인의 선택 문제가 아니라, 국민의 삶의 질과 직결된 사회적 의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주거 문제에는 과감한 정책이 반복되는 반면, 사교육 문제를 정면으로 다루는 정책은 점점 사라지고 있다. 그 사이 교육의 형평성은 약화되고, 중산층의 삶은 조용히 압박받는다.
중·고등학생 자녀에게 쓰는 사교육비를 떠올려 보면 이 문제는 더욱 분명해진다. 그 비용이면 아이들과 방학마다 해외를 여행하며, 교실 밖에서 세상을 경험하고 호기심을 키울 수 있다. 사교육은 부모와 자녀가 함께 누릴 수 있는 이런 시간과 경험을 재정적으로, 그리고 시간적으로 잠식한다. 대부분의 가정에서 자녀의 목표를 인서울대학으로 정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인서울 대학의 정원은 정해져 있다. 열심히 하면 입학할 수 있다는 말도 맞지만, 열심히 해도 모든 학생이 들어가지는 못하는 것도 현실이다. 모두가 진심으로 노력해도, 누군가의 아이가 들어가면 다른 누군가의 아이는 들어가지 못한다. 그럼에도 우리는, 인서울이라는 목표를 아이들 스스로에게 설정하게 하고 이를 달성하지 못했을 때는 재수를 선택하도록 몰아가고 있는 것은 아닌지… 열심히 했음에도 꿈을 이루지 못했을 때 아이가 훌훌 털고 새로운 목표를 설정할 수 있는 탄력성도 키워야 한다.
이런 점에서 정부가 추진 중인 ‘서울대 10개 만들기’ 정책의 성공은 사교육절감정책과도 관련이 있다. 지역 국립대의 교육 여건과 수준을 서울대와 동일하게 만들 수는 없더라도, 적어도 인서울 대학에 준하는 수준까지 끌어올리겠다는 공급 확대 전략이기 때문이다. 진심으로 이 정책이 성공하길 바란다. 다만 대학의 교육의 질을 높이는 것은 예산지원으로 달성되는 쉬운 일이 절대 아니다. 대학구성원과 지역사회가 국제경쟁력을 높이기 위해 제도와 문화를 바꿔야 하며 시간이 소요되고 사안에 따라서는 갈등도 수반되는 매우 어려운 과제이다. 이명박정부의 마이스터고 정책은 정부출범 바로 정책을 시작하여 3년 졸업생을 100% 선호기업에 취업시킬 때까지 관계부처가 같이 협력한 우수한 선례로 평가된다.
또한 이 정책의 진정한 효과는 수요가 특정 대학과 특정 경로에 과도하게 집중되는 구조를 완화할 수 있느냐에 달려 있다. 이를 위해서는 교수, 학생, 연구원 중 우수한 인재가 우수한 지역대학으로 이동하고, 그 선택이 안정적인 취업과 경력으로 이어진다는 분명한 사례가 축적되어야 한다. 동시에 수요 측면에서도 정책적 조정이 필요하다. 모두가 같은 ‘대입 경로’만을 향해 달리지 않아도 되도록, 마이스터고와 같은 직업계 고등학교를 더욱 강화하고, 직업 간 임금 격차와 사회적 차별을 지속적으로 관리하고 완화해 나가야 한다. 이러한 수요조정 정책이 작동할 때, 사교육에 의존하지 않아도 되는 선택지가 현실적으로 열릴 수 있다.
AI가 지식노동의 상당 부분을 대체하는 시대는 이미 시작됐다. AI가 할 수 없는 직업기술군만이 살아남고 안정적인 소득을 보장받을 것이라는 엔비디아 젠슨 황의 에견에도 귀를 기울일 필요가 있다. 실제로 글로벌 기업들이 전통적인 전공 중심 채용을 줄이고 있다는 신호는 곳곳에서 감지된다.
우리 아이들이 청소년기부터 스스로를 탐색하고, 다양한 방식으로 의미 있고 행복한 삶을 상상하며 준비할 수 있기를 바란다. 인서울 대학에 입학하지 않으면 실패자라는 인식을 통해 이익을 얻는 사람들은 과연 누구일까. 인서울에 진학한 학생은 자신의 노력과 더불어 운이 따랐음을 인정하고, 그렇지 못한 아이는 또 다른 길을 선택할 수 있도록 격려받는 사회. 지역 대학을 나와도 충분히 성공하고 행복할 할 수 있다고 대한민국을 상상해 본다. 사교육을 받지 않고도 만족할 만한 대학에 진학할 수 있고, 어느 대학에 가서도 자신의 삶을 즐기고 준비할 수 있는 대한민국 교육을 상상해 본다. 정책만으로 성공할 수 없다. 먼저 아이들의 자신이 원하는 일을 찾아가기를 지원하는 학부모들의 인식전환이 필요한 일이기도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