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적인 대학의 기준, 누가 정하는가?
영국은 세계대학랭킹에서 언제나 두드러진 존재다. 옥스퍼드와 캠브리지는 거의 예외 없이 최상위권을 차지하고, 세계 100대 대학에 포함된 영국 대학의 수 역시 미국 다음으로 많다. 이러한 외형적 성과만 놓고 보면 영국은 고등교육 국제화의 대표적 성공 사례처럼 보인다. 그러나 대학혁신과 고등교육 제도의 역사적 전개를 면밀히 살펴보면, 영국 대학의 위상이 이 수치만큼이나 혁신적이었는지에 대해서는 이견이 존재한다.
영국은 근대 이후 전 세계 식민지를 관리했던 제국이었다. 행정, 금융, 해상 교역, 법과 제도에서 영국은 오랫동안 세계 질서를 주도해 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대학의 발전, 특히 국가 차원의 연구대학 체제 구축이나 체계적인 국제화 전략은 비교적 늦게 시작되었다. 이 사실은 19세기 말에서 20세기 초, 미국 학생들이 유학장소로 선택한 국가를 보았을 때 분명해진다. 당시 미국 유학생들이 향한 주요 목적지는 영국이 아니라 독일이었다. 연구와 교육을 결합한 독일의 연구대학 모델이 미국에게는 훨씬 더 매력적인 학습 대상이었기 때문이다.
옥스퍼드와 캠브리지는 중세에 설립되어 성직자 교육을 기원으로 엘리트 교육을 제공해 왔다. 이들 대학은 오랜 기간 정치·행정 엘리트를 양성하는 데 탁월한 역할을 수행했지만, 근대 이후 과학기술과 국가 경쟁력을 직접적으로 견인하는 연구기관으로 기능하지는 않았다. 산업혁명을 가장 먼저 경험한 국가임에도 불구하고, 영국에서 과학기술의 발달은 대학보다는 기업과 산업 현장, 민간 발명가들에 의해 주도된 측면이 강했다. 대학은 혁신의 중심이라기보다 안정적인 엘리트 재생산의 제도로 남아 있었던 것이다.
이러한 영국 고등교육의 성격은 20세기 후반까지도 크게 변하지 않았다. 영국이 본격적인 전환의 계기를 맞이한 것은 제국이 해체되고, 미국이 과학기술과 고등교육에서 압도적 우위를 확보한 이후였다. 더 이상 과거의 명성만으로는 국가 경쟁력을 유지하기 어려워진 상황에서, 영국은 뒤늦게 대학을 국가 전략의 일부로 재인식하기 시작했다.
그 출발점은 1980년대 대처 수상 시기였다. 대처 정부는 공공부문 구조조정에 돌입하며 대학 역시 예외일 수 없다고 판단했다. 이 시기 고등교육 개혁의 핵심은 공공성을 전면적으로 부정하는 것이 아니라, 대학 운영에 시장경제적 논리를 도입하는 것이었다. 경쟁, 성과, 외부 재원 확보라는 개념이 대학 정책의 언어로 본격 유입되었다.
이러한 흐름은 토니 블레어가 총리로 취임한 1997년 이후 결정적인 전환점을 맞는다. 블레어 정부는 고등교육을 단순한 공공서비스가 아니라 국가 성장과 재정 안정에 기여하는 전략 산업으로 명시적으로 규정하였다. 유학생은 더 이상 부차적인 존재가 아니라, 영국 고등교육 체계를 지탱하는 핵심 주체로 자리 잡게 되었고, 국제화는 개별 대학의 선택을 넘어 국가 차원의 정책 목표가 되었다.
이와 동시에 영국 대학에 대한 국제적 인식을 근본적으로 바꾼 계기가 바로 세계대학평가 제도의 도입이었다. 2004년 QS는 Times Higher Education과 함께 세계대학평가를 시작했고, 2010년 이후 두 기관은 각각 독립적인 랭킹을 발표하고 있다. 영국은 대학의 혁신과 연구 경쟁에서는 후발주자였지만, “세계적인 대학이란 무엇인가”를 정의하는 기준을 선점함으로써 자국에 유리한 고등교육 지형을 창조하는 데 성공했다.
기존의 대학 평가는 연구 실적, 노벨상 수상자 수, 논문 수 등 연구 역량에 지나치게 집중되어 있었다. 이에 비해 영국발 세계대학평가는 교수 1인당 학생 수, 유학생 수와 외국인 교원 비율, 졸업생 평판 등 교육 여건과 사회적 인식 요소를 적극적으로 포함했다. 이는 연구 실적에서 불리한 대학들도 평판과 교육 환경을 통해 경쟁력을 확보할 수 있도록 평가의 ‘판’ 자체를 바꾸는 효과를 낳았다.
현재 영국에서 수학 중인 유학생 수는 약 60만 명 수준이지만, QS 평가가 도입되던 시기에는 약 20만 명에 불과했다. 이 변화가 전적으로 세계대학평가 때문이라고 단정할 수는 없지만, 평가 제도가 우수한 학생들을 영국으로 유인하는 데 중요한 신호 역할을 했다는 추론은 충분히 가능하다. QS 평가는 민간 평가이지만, 브리티시 카운슬을 비롯한 영국 정부 기관들이 해외 유학생 유치에 직·간접적으로 힘을 실어왔다는 점 또한 잘 알려진 사실이다.
물론 이러한 영국식 평가에 대해 미국, 프랑스, 독일 등 선진국들은 초기부터 대학의 역량을 제대로 반영하지 못한다는 비판을 제기해 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영국은 나름의 논리를 발전시키며 평가 체계를 지속적으로 개선해 왔고, 특히 아시아와 아프리카 지역에서의 유학생 유치 영향력을 유지하는 데 성공했다. 그 결과 교육은 관광과 더불어 영국의 가장 중요한 산업 중 하나로 자리 잡게 되었다. 이는 영국의 국제적 영향력을 확대하는 데 기여했을 뿐 아니라, 동시에 유학생과 지역 주민 간의 긴장과 갈등이라는 새로운 사회적 과제도 낳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많은 대학 도시에서 유학생 유입으로 지역 경제가 활성화되고 있다는 사실은, 고등교육 국제화가 국가 경제에 미칠 수 있는 영향을 보여주는 중요한 사례다.
최근 한류의 확산은 한국에 대한 문화적 호감과 인지도를 크게 높였고, 이는 실제로 한국으로의 유학생 유입 증가로 연결되고 있다. 이 지점에서 우리는 질문하게 된다. 한국에서 유학은 산업이 될 수 있는가? 흥미롭게도 QS 평가에서 한국은 일본이나 독일보다 상대적으로 유리한 위치를 점하고 있다. 2025년 기준으로 한국은 세계 100대 대학에 5개 대학을 포함시키고 있으며(2026의 경우 카이스트가 평가에서 제외되고 포항공대가 102로 하락), 이는 일본이나 싱가포르보다 높은 수준이었다. 노벨상 수상자 수나 장기적 연구 전통에서는 분명 한계가 존재하지만, 졸업생 평판과 국제적 인지도에서는 다른 양상이 있는 것으로 보인다. 유학생 수와 외국인 교원 수가 지속적으로 증가할 경우 한국 대학의 순위는 추가로 상승할 가능성도 있다.
대학랭킹이 지니는 부정적 기능—과도한 서열화, 학문 다양성의 훼손, 단기 성과주의—은 분명 존재한다. 그러나 세계 200위, 500위권 안에 대학이 포함된다는 사실이 인도, 아시아, 중국 등지의 우수한 인재를 흡수하는 데 매우 강력한 도구로 작동하는 것도 현실이다. 이미 영국이 만들어 놓은 세계대학평가라는 ‘판’은 글로벌 고등교육 질서의 일부가 되었다.
결국 중요한 것은 이 판을 거부할 것인가의 문제가 아니라, 어떻게 활용할 것인가에 대한 전략적 판단이다. 영국은 대학 혁신의 선도국은 아니었지만, 대학을 평가하는 기준을 선점함으로써 고등교육 국제화의 규칙 설계자가 되었다. 한국 대학 역시 이 질서 속에서 단순한 추격자가 아니라, 각자의 강점을 바탕으로 선택적·전략적으로 대응할 여지가 있다. 영국이 설계한 평가의 판 위에서 한국 대학이 어떤 방식으로 움직일 것인지는 이제 각 대학과 정책 결정자의 선택의 문제로 남아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