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렸을 적 학교에 다닐 때는 공부만이 살길이요, 세상이 정해놓은 줄에서 벗어나면 낙오자라는 낙인이 찍혀 사회부적응자로 생을 마감하게 될지도 모르다는 걱정을 안고 살았던 것 같다. 하지만 오십이 넘어 뒤를 돌아보고, 앞을 상상해 보자면 과연 지난날의 걱정이 합당한가에 대한 의문이 생기기도 한다.
신랑은 많은 노력 끝에 고급 프로그래머로 몇 십 년을 일하며 사회활동에 대한 보람과 긍지를 가지고 있었다. 문제를 해결해 나가는 과정에서 요구하는 주도면밀함과 세심한 일처리는 그의 큰 장점이었다. 작년 1월에 신랑에게 AI의 발전 속도가 무서우니 코딩도 한번 풀어보라고 권하자 해보고는 아직 대학생 수준이라 몇 년은 괜찮을 것 같다며 웃었었다. 그런데 작년 12월, 장기 프로젝트가 끝나고 다른 프로젝트를 알아보던 두 달여의 시간에서 살펴보면 개발자를 뽑는 프로젝트가 현저히 줄었고 일을 구하는 사람은 너무 많아져 재취업이 예전에 비해 많이 어려워졌음을 피부로 느끼게 한다.
다른 프로그래머들도 그런 위기 속에 있어서인지 안부를 묻는 전화가 다시 일을 할 수 있을까 하는 걱정으로 끝나는 것을 많이 듣게 된다. 신랑 또한 갑작스럽게 찾아온 공백이 불안한지 고용노동부에 가서 재취업 상담을 해보니 나이가 많아서 이직을 고려해 보는 것도 좋겠다는 답변을 듣고 왔다고 한다. 넉넉히 5년은 더 일할 수 있을 거라는 호언장담은 날아가고 갑작스레 모든 게 빠르게 변해버린 시대의 낙담만이 가득 채워지고 있다. 하지만 그 큰 파도를 작은 인간 하나가 막을 수는 없고, 오는 계절을 바꿀 수 있는 힘이 없는 이상 추운 계절이나 속이 타는 가뭄의 시기를 잘 이겨내는 수를 찾는 수밖에 없을 것이다. 다행히 나는 다시 출근할 수 있어서 감사함을 느끼고 있다. 지금껏 든든하게 울타리를 만들어 아이들과 나를 위해 세상의 비바람을 막아준 신랑에게 이번엔 내가 작은 안식을 선물해주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