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 언덕

by 이혜연
봄 언덕

어제의 것들 위로

오늘이 피었다


마른바람에

날카롭게 부딪히는

나뭇가지들은

예민하게 날이 서있다


하지만

봄 언덕은

여기저기

낡은 물길을 찾아내

기어코

꽃을 피워댔다


손톱만 한 꽃잎 안에

수없이 앙증맞은

수술과 암술을 들여

내일을 기다리는

봄의 설렘이


언덕 한가득

만개했다




봄날 들녘에 나가서 산책을 하다 보면 깜짝깜짝 놀라곤 한다.

마른풀 사이로 파릇한 싹들의 힘찬 모습과 멀리 서는 보지 못했던 꽃무더기를 수없이 만날 수 있기 때문이다.

작고 앙증맞은 꽃들을 자세히 바라보다 보면 봄볕에 타는 줄도 모르고 하염없이 보고 있게 된다.

나태주 시인이 "자세히 보아야 예쁘다"라고 했던 말은 야생화에 가장 어울리는 게 아닐까 싶다.

그러다 가끔 나는 어떤가 생각해 보는 날이 있다.

자세히 보면 정말 예쁜가?

마음속을 스쳐가는 수만 가지 생각들과 상념들을 누군가에게 들킬까 겁날 때가 있다.

자세히 들여다보는 이에게 들키고 싶지 않은 부끄러운 치부를 드러내게 될까 두려울 때도 있다.

자세히 나를 내가 들여다볼 때 진짜 오늘을 잘 살아내고 있는지 묻고 싶을 때도 있다.

어제의 꽃들이 죽고 다시 태어나는 봄.

그 안에 현생을 아름답게 살아내는 꽃들이 언덕에 지천으로 피어있다.

봄 한낮의 햇볕을 다시 보기 위해 가을을 거쳐 죽음의 겨울을 견디며 다시 또, 태어나는 야생화들처럼 하루, 한 날의 햇살도 소중히 여기는 삶을 살아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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