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름 산책

by 이혜연
여름 산책

바람도 쉬어가는

여름 한 낮

좁은 그늘


꽉 채워진 삶 속에

기진맥진 쉴 곳이 필요할 때

무겁고 진중한 걸음으로

오늘을 걷는

코뿔소처럼


햇살을 막아서는

일상의 어느 날

그늘이 무성한 그곳에서

달뜬 몸을 쉬게 하자




6월이 오니 아이들이 노는 놀이터도 더워졌습니다.

하염없이 기다려야 하는 엄마는 밴치에서도 숨 막히는 더위에 힘들어하는데 아이들은 땡볕에서 축구를 하며 땀을 뚝뚝 흘리면서도 싱그럽기만 합니다.

같은 시간에, 함께 있는 공간에서도 인생의 시간은 다른 듯 느껴집니다.

팔딱팔딱 살아서 움직이는 그 시간을 오래전 잊어버린 늘근 어미는 여름이 버겁습니다.

다리도 무겁고 조금만 걸어도 살갗에 느껴지는 햇살의 온도에 달구어져 버려 그늘로, 그늘로 서둘러 도망칩니다. 아이였을 때는 태양이 전혀 무섭지 않았습니다. 물론 비도 그랬지요.

날씨는 삶의 부속물이었습니다.

눌지못 할 날씨란 애초에 없었습니다.

하지만 지금은 날씨에 서서히 종속되어 갑니다.


비가 내리는 날은 잠을 설치고, 무릎이 무거워지며, 바람이 불면 살갗이 아파 몸을 꽁꽁 웅크린 채 걸음을 재촉합니다. 그나마 아직 남아있는 감각은 눈이 올 때 설레는 마음 한 자락, 그뿐인 듯합니다.

하지만 덕분에 그늘이 주는 여러 가지 미덕에 감사하는 날들을 맞이하기도 합니다.

시간이, 인생이, 오늘이 감사를 알게 합니다.

오늘, 뜨거운 햇살을 막아서준 나무에게 감사합니다.

그늘을 살랑살랑 흔들어주던 바람에 감사합니다.

삼삼오오 모여 앉은 옆지기들과 시답잖은 이야기를 나누며 웃을 수 있음에 감사합니다.

그렇게 하루하루, 내가 걸을 수 있는 그 걸음만큼 감사로 마무리할 수 있게 하심을 감사합니다.

keyword
작가의 이전글고독하고 따뜻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