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렇기 때문에처음 땅에 떨어졌을 때
나는 1mm의 면적을
허락받았을 뿐이다
내 안에서 자라날
수많은 잎들과
하늘을 향해 들어 올릴
많은 줄기들
그리고
내게 허락된 수많은
꽃들은
1mm의 틀 안에
감추어져 있었다
어쩌면 나의 수고는
소망을 감싼 그 1mm의 껍질을
벗는 것만큼이었는지도 모르겠다
그리고 저 밑에
생명의 젖줄이 흐르고 있음을
믿음으로
뿌리를 내리고
견고히 그 시간을
견뎌내는 것
그렇기 때문에 나는
향기롭게
세상을 밝힐 수 있음을
알게 되는 것.
결핍을 안다는 것은 축복이다.
그건 신이 자기 스스로가 채워야 할 크기를 생각해볼 수 있게 해주는 기회이기 때문이다.
예전에 한의사 친구의 친구가 전한 심각한 고민을 들었던 적이 있다. 그 친구의 가장 큰 고민이 무엇이었을까? 가장 치명적이고 위험한 그의 결핍은 '통증을 못 느낀다'는 것이었다. 세상에 그런 사람이 어딨냐고 웃으며 받아쳤지만 만약 그런 사람이 있다면 아플 일이 없어서 완벽하다고 해야 할까? 아니면 두눈박이 세상에 외눈박이처럼 아픈 사람이 한둘이 아닌 세상에 외계인으로 살 수밖에 없는 슬픔을 이야기해줘야 할까?
돌아보면 성공했던 일들보다 넘어지고 깨졌던, 즉 내가 아파봤을 때 나는 조금 더 성숙할 수 있는 기회를 얻었던 것 같다. 고통 그 자체가 나를 성장시킨 게 아니라 그걸 받아들이는 내 자세가 조금씩 넓어지면서 나는 꽃이 핀 것에 감사했고 비가 오는 날 신발이 젖는 것에도 즐거움을 느낄 수 있었다.
세상에서 피어나는 꽃들도 아주 작은 씨앗의 꿈이었던 것처럼 내 안의 소망들도 수많은 오늘의 수고로 아름답고 향기롭게 꽃 피울 것을 믿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