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겨울비 속의 봄

by 이혜연
겨울비 속의 봄



겨울비 치고 제법 많은 양의 비가 내리는 날이었다.

왠지 쓸쓸하면서도 초연하고, 차가운 듯 하지만 따뜻함을 느끼게 되는 비였다.

눈이었다면 너무 설레서 아무것도 못 하고 그저 하얀 축복이 쏟아진 거리를 황홀한 듯 바라봤을 것 같은 그런 빗 속에서 뜻밖에도 봄을 보았다.

긴장하고 굳어있는 멈춰있는 것들 위로 포근한 비가 차갑게 내려앉은 먼지를 따뜻하게 씻겨주고 있었다. 덕분에 마른 가지들에서도 생기가 돌고 푸른 상록수들은 오래간만에 맘껏 호흡을 하며 파릇하게 빛나고 있었다.

따뜻한 비가 내리고 나면 다시 동장군의 칼바람에 모든 것들이 숨죽여 존재를 지울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 속에서도 여전히 오늘의 비를 머금은 씨앗들이 싹을 틔울 준비를 하고 있음을, 나는 믿는다.

keyword
작가의 이전글나는 매번 오늘을 꿈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