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가 어렸을 때 엄마는 말수가 별로 없고 자주 웃으시던 수더분한 분이셨습니다. 내 위로 5살 터울인 언니가 아팠기 때문이었는지 시골분이셨는데 사랑한다는 말을 자주 해주셨습니다. 의처증 증세를 보이던 아빠에게 맞아 온몸에 멍이 들던 날도 저를 보곤 항상 웃어주셨습니다. 하지만 둘이 산으로 나무하러 가면 솔가지 갈퀴로 긁다가 저수지 보이는 언덕에 앉아 자신의 깊은 속내를 말씀하시곤 했었죠. 저는 그저 듣는 것 밖에 할 수없어서 함께 아궁이에 넣을 솔가지를 모으며 엄마의 상처가 낫기를, 마음의 아픔이 제게로 조금 넘어오기를 기도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러던 어느 겨울밤, 두터운 솜이불을 꿰매며 이루지 못한 첫사랑 이야기를 하실 때의 모습이 아직도 생생합니다. 여름 내 까맣게 그을린 기미 낀 얼굴 대신 볼 발그레한 예쁜 아가씨가 앉아서 이야기를 하고 있었죠. 밤은 깊었고 이루지 못한 사랑이 가여워 안타깝다가도 그 인연이 이루어지지 않고 엄마가 우리 엄마여서 얼마나 다행인지 속으로 안도하곤 했습니다. 그때의 이기적인 아이는 이제 커서 어릴 적 제 모습과 꼭 닮은 아이들을 키우며 긴 겨울밤을 이야기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