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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울 속 여름 이야기

by 이혜연
한 겨울 속 여름 이야기


한여름 뜨거웠던 광장에

하얀 눈이 내린다


홀로 선 나무의 머리 위로 어깨 위로

먼 여행에서 돌아온 작은 안부들이

기다리다 기다리다 빼빼 말라버린 나무의

가느다란 뼈 위로

하얀 옷을 입히고 있다


박혀있는 발을 빼지 못하는

순백의 신부는 그 여름

함께 한 바다가 그리워

뚝뚝 차가운 눈물이 난다


서울에 이렇게 눈이 많이 내렸던 해는 별로 없었던 것 같습니다. 아이들과 모자와 부츠 스키복을 단단히 챙겨 입고 올림픽 공원으로 향했습니다. 지난여름 물놀이장이었던 곳이 눈썰매장으로 변신했죠. 곳곳에 배치된 안전요원들과 간이 휴게소에는 온풍기까지 설치되어 있었습니다. 더군다나 오늘은 펑펑 내리는 함박눈까지.. 정말 어느 것 하나 빠지는 것 없이 완벽한 겨울입니다. 이제 조금 컸다고 제각각 놀고 싶은 곳에서 잘 놀아주는 아이들 덕분에 여유롭게 커피도 마실 수 있어 행복한 시간이었습니다. 아직 감기가 완전히 낫지 않았지만 이런 날을 놓칠 수는 없죠. 제가 어렸을 때 엄마는 눈이 오는 날은 춥지 않다고 여러 번 말씀하셨는데 오늘이 그랬습니다. 정말 따뜻한 날씨에 하염없이 하염없이 하얀 눈이 내렸습니다. 아이들을 바라보는데 아주 오래된 작은 아이가 하나 보입니다. 얼굴은 발그랗게 항상 동상이 걸려있고 손등은 쩍쩍 갈라져 피가 나는데도 겨울이 너무 좋았습니다. 하얀 눈이 너무 좋아 눈 오는 날은 잠을 이루지 못했습니다. 그렇게 눈을 좋아하던 작은 아이는 겨울에 태어났고 오늘처럼 하얀 겨울에 첫아이를 낳아 지금 함께 함박눈을 맞으며 놀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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