함박눈이 내린 다음날, 날이 너무 포근해서 눈은 거의 녹고 해가 잘 들지 않는 그늘에 엉성하게 남은 것들은 초라해 보입니다. 이른 저녁, 공방에 노란빛 불이 켜지고 건물을 지키는 커다란 소나무가지에 앉은 눈이 어제의 눈부셨던 함박눈을 기억하고 있었습니다. 언제나 축제가 끝나고 난 후가 가장 공허하고 쓸쓸한 것 같습니다. 그래도 어제의 눈이 녹아 땅이 촉촉해지고 말랑해진 걸 보면 그 안의 봄의 씨앗들이 무사히 뿌리를 내리고 싹을 틔울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땅 속에서 꿈을 꾸는 모든 생명이 태어나는 봄은 또 얼마나 아름다울까요. 새로운 축제에 대해 기대하게 되는 저녁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