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람이 따스해지는 느낌이 드는 걸 보면 분명 봄은 살그머니 꽃대를 정비하고 있을 것입니다. 아이들 방학에 지하철 타고 여행하듯 여러 군데를 돌아다니고 있는데 오늘은 한 시간 거리의 과천국립과학관이었습니다. 과학관 내에 있는 체험부스와 우주 영화 기획전을 예약해 두었기에 새벽밥을 먹고 아침 일찍 길을 나섰습니다. 아이들은 방학 내내 대중교통을 이용해서 엄마와 나들이 가는 게 즐겁다며 깡충깡충거립니다. 조금 피곤하지만 두 똥그리의 폴짝폴짝 뛰는 모습을 보면 '내일은 또 어딜 갈까' 하며 계획을 세우게 됩니다.
약속이 있거나 일정이 있는 날은 새벽에 그림을 그려야 하기 때문에 새벽 4시에 일어나 책을 읽고 그림을 그렸습니다. 진지한 통찰과 잘 정돈된 문장들에 감탄을 하며 읽을 수 있는 책을 만나 새벽은 더 풍성해졌습니다.
그렇게 오늘 만난 첫 번째 문장은 바로 이 글귀입니다.
"내가 옳다는 것을 어떻게 아는가?"
이제 첫 페이지를 넘긴 지 얼마 안 되기 때문에 이 질문에 대한 작가의 답과 해결책을 아직 읽어볼 수는 없었습니다. 다만 오늘 이 작가와 우연히 공원벤치에 나란히 앉아있고 적당히 따스한 햇살에 살짝 기분이 좋아져 낯선 이에 대한 경계가 느슨해진 때, 늙은 노신사가 만약 내게 이런 질문을 했다면 나는 어떻게 대답할 것인가를 상상하며 글을 쓰고 있습니다.
수많은 의사결정에서 나는 내 중심, 내 견해, 내 경험치에 바탕을 두고 결정을 내립니다. 그렇기에 수많은 결과치를 검증하고 다른 관점을 투영하기에는 우리 시야가 너무 좁습니다. 나 스스로 내 결정이 백 프로 완벽하지 않다고 생각하고 있지만 그에 상응하는 해결책을 갖고 있지 않을 때도 많고 반대되는 의견이 옳더라도 내 존재가 부정당했다는 패배감을 견딜 수 없는 경우에는 옳고 그름이 아닌 나 자신을 지키는 방어벽으로 '내가 옳았음'을 고집하게 됩니다. 하지만 그런 방법으로는 나 자신은 물론이고 관계하는 모든 인연들에 대해서도 우리 자신을 지킬 수는 없습니다.
내가 옳다는 것을 어떻게 아는가?
'옳다'는 것은 혼자 일 때는 필요가 없는 사고체계입니다.
내가 만약 푸른 이 행성에 혼자 살고 있었다면 나는 언제나 옳고 나의 모든 행동은 정답이 될 수 있었을 것입니다.
옳고 그름은 관계의 용어입니다. 그런데 어느 부분에서는 경계가 아주 희미하다는 문제가 있습니다. 그 희미한 경계선 때문에 아마도 우리에겐 신뢰를 가질만한 기준점, 즉 원칙이 필요하다는 생각이 듭니다.
"의사결정 능력은 현실과 부딪히면서 배우는 것이다."
이 문장에서 아이를 키울 때 세워야 할 원칙 중 하나를 탐색해 보게 되었습니다. 자신의 세계, 나를 지키는 울타리 경계를 아이 스스로 깨닫게 하기 위해 엄마인 나의 원칙은 무엇이 되어야 하는지 생각해보게 하는 귀한 문장을 만나게 되는 아침이었습니다.
오후 늦게 지하철을 타고 집으로 와서도 저녁까지 놀이터에서 놀아주시는 두 똥그리들의 원칙은 아마도 '신나게 놀자'이겠지요? 다행히 엄마인 저도 '지금 놀자', '젊을 때 즐기자', 한 살이라도 어렸을 때 도전하고 실패해 보자'라고 생각하고 있어 아직은 견딜만한 방학이 되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