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째가 피아노 학원을 다닌 지 1년이 조금 넘었다. 지금 바이엘 4권을 치고 있는데 재밌다며 성실하게 다니고 있다. 30년 경력이 넘은 할머니 선생님이신데 첫째가 집중도가 상당히 좋다며 볼 때마다 칭찬해 주시며 독려해 주신다. 하지만 가끔 영상을 보내주시는 모습에서는 잔뜩 긴장되어 있는 어깨와 느리거나 빠른 박자, 그리고 정신없이 기호를 읽어내리려는 분주한 눈동자를 보게 되고 더듬거리며 다음 음을 찾는 안타까운 작은 손가락이 보일 뿐이다. 그런데도 항상 진지하게 한 곡을 마칠 때마다 성취감을 느끼며 현재 치고 있는 곡을 집에서 유튜브로 틀어달라고 한다. 그러면서 흥얼흥얼 그 곡을 익히는 과정을 반복하고 있다.
처음 육아라는 분야에 입문했을 때 나는 계이름도 읽지 못하는 생초보 엄마였다. 검은 것은 줄이요, 콩나물 같은 음표는 도대체 뭘 어떻게 하라는 건지 모르겠다는 느낌만 들뿐 전혀 음악이 되지 못했다. 당연히 어깨에 힘이 들어갔고 정신없이 정답을 찾기 바빴다. 아이가 울면 사지선다처럼 예시가 있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지금까지 내가 받은 교육은 언제나 예시가 정해져 있었고 나는 그중에 모두가 옳다는 것 하나를 외워서 정답을 쓰면 사회적으로 매우 발달한 인간 취급을 받으며 살았었기 때문에 예시가 없는 삶, 설명을 요구하는 문제에 대해 적절한 훈련이나 답을 찾는 방법을 몰랐었던 것 같다. 그래서 떼를 쓰는 아이에게 나중에 성인이 되었을 때나 아이의 삶에 미칠 영향을 가정하며 정확한 잣대를 가져다 대고 교육시켜 반듯하게, 번듯하게 키우는 방법을 알고 싶었었다.
"친구가 동료들과 발을 맞추지 못하면 아마도 다른 북소리를 듣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그 소리가 멀리서 들리거나, 느리더라도 그가 듣는 음악소리에 발을 맞추어라."
- 헨리 소로
하지만 아이를 키우면서 느끼는 것은 한 사람으로서 고유한 음악을 스스로 연주할 수 있게 되는 게 무엇보다 중요하다는 것이다. 같은 악보를 보고 서로가 다른 해석을 하고 자신만의 음악으로 승화시킨 사람만이 갖는 희열이 있을 것이다. 아이와 나는 처음엔 더듬더듬 서로의 기호를 이해하려고 노력했고 다음은 어느 때 쉬어야 하는지, 어떤 때는 끊어가야 하는지 서로 조율해나가야 했다. 그리고 지금 우리는 더듬더듬 음표를 읽으며 아직 건반을 자유롭게 움직이지 못하는 몸을 가지고 서로의 음악을 익히고 있다. 내가 듣는, 혹은 듣고 싶은 음악에 맞춰 발을 맞추지 못하는 아이라면 그 아이가 듣는 음악을 들으려 노력하거나 아이의 음악에 발을 맞추는 것이 맞다고 생각한다. 물론 항상 뜻대로 되는 일은 아니지만.
"모든 사람이 현재와 비교했을 때 미래는 아주 조금만 달라질 것이라고 기대하지만, 일반적으로는 완전히 달라진다."- 레이 달리오 <원칙>
현재의 삶의 풍경은 어린 시절 그때는 상상조차 하지 못했던 세계였다. 내가 상상했던 것이라곤 '저 산너머에도 사람이 살고 있을까?' 정도였다. 버스도 다니지 않는 비포장도로가 첩첩 산 중 어딘가에 가서는 결국 끊어져있어서 그걸 이어 줄 길이 있는지도 궁금했지만 그 길 끝에 사람이 진짜 살고 있는지도 항상 궁금했었다. 그러니 삶의 변화속도가 얼마나 급격하고 변화무쌍한 지 새삼 느낄 뿐이다. 우리는 항상 현재를 살고 있는 듯하고 그것은 오늘이라는 프레임에 갇혀 별 변화 없이 밥을 먹고, 자고, 반복적으로 다시 일어나는 것 같아도 수많은 급류를 만나고 모든 것을 부숴버리는 파도에 삼켜지기도 하는 삶을 겪게 된다. 그건 생이 우리에게 주어진 것처럼 어쩌면 당연하고 자연스러운 일일수도 있다. 그럴 때 우리는 자신만의 노래를 부를 수 있어야 한다. 변화된 내일을 완벽히 상상하지 못하는 것은 엄마인 나도 마찬가지이기 때문에, 아직은 악보와 손가락의 움직임이 어설픈 바이엘 단계인 육아맘인 나는 오늘도 느리거나 내게는 아직 들리지 않는 아이만의 음악에 맞춰 발을 맞추려고 노력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