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렸을 때 우리 마을엔 침놓는 할머니가 계셨었다. 내가 예닐곱 살 때 마을에선 머리가 깨지면 된장을 발랐고 상처가 나면 길가의 쑥을 돌로 찧어서 피가 나는 곳에 발랐었다. 지금 사람들은 무슨 미개한 짓이냐며 말도 안 된다고 하겠지만 나는 적어도 중학교 때까지 다치면 쑥을 찧어 상처를 치료했었다. 그래서 아이들이 다쳐도 웬만하면 괜찮다고 말하는데 나보다 한 살 많은 신랑은 도시에서 자라서인지 소독약부터 챙기고 본다. 조금만 상처가 나도 신랑은 재빠르게 밴드를 붙이곤 한다. 하지만 내 어릴 적 지금도 기억나는 건 상처가 깊은 곳에 마을어른이 담뱃잎을 바르는 장면이다. 그런 분위기에서 자라서인지 웬만한 상처에는 무덤덤한 편이다. 어쨌든 어렸을 때, 침놓는 할머니는 마을의 의사 같은 역할을 했었다. 몸이 아파서 가면 침도 놓고 약도 지어주셨던 기억이 있다. 그리고 또 하나 특이했던 건 그 할머니가 점도 같이 봤던 일이었다. 집안의 대소사나 집터를 고를 때, 이사할 때, 대문의 위치까지 할머니에게 가서 물어봤었다. 지금도 기억하는 건 산 언저리 어떤 아저씨 집을 옮길 때 거기는 안된다고 했었는데 고샅에서 놀고 있으면 동네 어른들이 계속 그 아저씨 집터 옮기면서 많이 아프게 되었다는 이야기를 심심찮게 해서 뇌리에 깊게 남게 되었었다.
영화를 본 지 너무 오래돼서 최신 상영작에 대해 관심이 없었는데 요즘 '파묘'에 대한 관심이 뜨거워서인지 간간히 이야기가 들린다. 터에 관한 이야기이면서 친일파에 대한 이야기라는 정도의 리뷰를 접했다. 보지 않았으니 영화에 대한 이야기를 할 수는 없다. 다만 더불어 관심이 생기는 게 있으니 '음양오행'이나 '터'라는 것이 가지는 의미, 그리고 인과응보에 대한 것, 그리고 미래는 정해진 것인가 하는 생각까지였다.
그러다 어제 초등 입학을 한 둘째의 한자이름을 쓰기 위해 작명소에서 준 이름 뜻풀이와 사주를 보게 되었다. 성격이나 다른 부분은 그냥 넘기더라도 주의 사항에 '시력이 나쁨'이라고 쓰여있어서 너무 놀랐다. 아이가 태어난 날 지은 이름이니 아이를 본 적도 없을 텐데 그 많은 부위 중에 어떻게 시력이라는 걸 알 수 있었을까 소름이 끼쳤다. 첫째 때 우리 부부는 이름을 짓기 위해 임신 내내 도서관을 들락거리며 좋은 이름을 생각하려 애썼었다. 배가 만삭이 됐을 때는 원하는 이름을 짓지 못하는 신랑을 탓하며 아이 이름에 대해 고심에 고심을 더했었다. 그러다 응급수술로 제왕절개를 한 다음날 출생신고를 위해 결국 급하게 작명소에서 이름을 지어왔었다. 그때 이름을 지어준 곳에서 첫째에게 남동생 사주가 있다는 말을 들었었다. 그러다 둘째도 같은 곳에서 이름을 지었는데 한 동안 잊고 있다가 어제 한자를 확인하려고 들춰보니 시력이야기가 있어서 깜짝 놀랐다. 우연의 일치인지 정해진 이야기가 있는 것인지는 아직도 알 수가 없다. 다만 내가 모르는 것들이 너무 많이 있으며 측량할 수 없이 넓은 우주 안에 아주 미세한 인간의 운명도 어떤 규칙을 따르는 주기가 있을 것이라는 생각이 조금 들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