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일락 꽃이 영글었고 앵두꽃, 노지 튤립, 제비꽃들과 길가의 노란 민들레까지 비어있던 모든 곳을 채울 것처럼 온 동네가 꽃 잔치다. 덩달아 사람들 마음도 화사해진 느낌이다. 약속이 있든 없든, 만나야 할 이가 있든 없든, 봄바람 따라 저 횡단보도를 건너 다른 곳으로 가야 할 것 같은 의무감마저 든다.
학창 시절부터 사생팬 기질이 없었던 나는 비틀스도 그냥 남들 좋아하는 것만큼 좋아했던 것 같다. 하지만 에비로드의 횡단보도를 건너는 장면이 있던 재킷은 마음 깊숙이 자리 잡았다. 스틱메시지 같은 느낌도 든다. 평범함 속에 특별함을 부여하는 능력은 보는 이의 생각과 감정이 이입돼서 더 강렬하게 느껴지는 것일지도 모른다. 일상으로 보는 횡단보도는 그냥 도로 위 사람이 걸을 수 있는 신호에 건너야 하는 약속된 그림이지만 그걸 그림이나 사진으로 보면 또 다른 느낌이 생기기도 한다. 우선 이곳에서 저곳으로 옮겨간다는 것에 눈길이 간다. 질주하는 어떤 것들에 선을 긋는다는 느낌도 들고 어제의 것들을 건너 다음으로 넘어가는 이미지도 생긴다.
요즘 닭에 한참 빠져있다 보니 닭의 생명력과 우아한 곡선이 더 아름답게 느껴진다. 벼슬의 다홍빛도 너무 예뻐서 한참을 찐 다홍, 빨강, 자줏빛 빨강사이에서 고민했었다. 그만큼 오묘했고 그러다 빛의 반사로 연분홍을 칠할 때는 괜히 기쁨의 환호성을 지르기고 했다. 그런 닭들이 이곳에서 저곳으로 옮겨가고 있다. 어제의 나를 오늘로 데리고 가는 신나고 경쾌한 발걸음이 노래로 튕겨져 나올 것 같은 느낌도 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