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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놓치고 있는 것들

by 이혜연
내가 놓치고 있는 것들

우리 집 아침 풍경은 항상 정신이 없다. 형제라서 그렇다기보다 엄마인 나를 닮은 둘째 때문인 경우가 대부분이다. 아빠 성향이 짙은 첫째는 실수하는 법이 별로 없다. 첫번째 똥그리는 항상 시간을 보고 준비하고 자기가 할 일, 혹은 해야 할 일을 미리 체크해서 아침에 서두르거나 당황할 일이 거의 생기지 않는다.


문제는 나를 닮은 둘째다. 항상 뭔가가 빠져있거나 느리고 당장 지금 해야 하는 일들이 준비되어있지 않다. 오늘 아침 등교 전에도 갑자기 공부하는 방에서 딱풀을 찾겠다고 허둥대는 둘째와 마주쳤다. 학교에서 써야 할 풀을 모두 써버리고 한동안 친구에게 빌려 썼는지 어제 선생님께서 더 이상 친구에게 빌리지 말라는 통보를 하셨다고 한다. 그동안 내게 풀이 모두 소진됐다는 이야기를 한 번도 한 적이 없다. 집에 여유로 사두었던 풀들도 모두 둘째가 한 번 쓰고 뚜껑을 열어두고 서랍 속에 숨겨둬 버린 결과 쓸 수 있는 게 하나도 없었다.


거기다 아이들이 다니는 초등학교 근처에는 문방구가 없다. 유일하게 후문 쪽에 있던 문방구가 겨울에 문을 닫으면서 학교 근처에서 학용품을 살 수 있는 곳이 없어져버렸다. 하나뿐인 문방구가 페업할 때 나는이렇게 생각했다. "와!! 진짜 얼마나 장사가 안되면 한 군데 있던 곳도 없어져버린 걸까? 소비패턴이 완전히 바뀐 모양이구먼!"

그러곤 없어진 문방구대신 분식집이 들어오면 좋겠다고 생각했을 뿐 잊어버리고 있었다.

오늘 급하게 풀을 사야 하는 일이 생기니 그 문방구가 너무나 아쉬웠다. 그런데 그때 얼마 전에 생긴 무인 가게가 생각났다. 원래 있던 수학학원이 폐업을 한 후 학교 근처에 아이들 과자와 아이스크림, 그리고 팬시물건들을 파는 곳이 생겼는데 사람이 지키지 않는 무인가게였다. 작은 가게엔 아이스크림과 냉동 탕후루, 각종문구가 있었는데 그곳이 요즘 아이들에게 핫플이 되었다. 그전에 없어진 문방구는 오랜 세월 주인 내외가 운영하던 곳이었는데 생각해 보면 그 자리 그대로 조금 품목을 바꿔서 무인점포를 운영해도 되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조금만 생각을 달리해보면 그곳은 무혈입성을 할 수 있는 좋은 기회가 될 수도 있었다.


요즘 수학을 공부하며 sin의 의미나 루트의 의미를 이제야 알게 되었다. 어떤 기호인지, 무슨 의미를 가지고 있는지 모르고 외우니 어렵기만 하고 답을 찾기 어려웠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심지어 고등학교 때까지 문과였지만 내 수학성적은 좋은 편에 속했다는 게 더 놀라웠다.

아무것도 이해하지 못한 채 마냥 이렇게 해야 한다고 하니 그렇게 외우고 머리에 억지로 쑤셔 넣어놓고 어떤 그림도 그리지 못했던 것 같다. 내가 놓친 생각들은 내가 보지 못한 면들의 이면에 아주 커다랗게 자리 잡고 있었음을 깨닫게 된다.

그렇게 오늘, 둘째 덕분에 놓치고 있었던 생각의 빈자리를 발견할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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