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춘곤증으로 매일 오후 2시가 되면 눈을 뜨고 있지 못할 정도로 졸음이 몰려온다. 몸도 무겁고 피곤도 더 빨리 느끼게 되다 보니 어제는 '혹시 임신인가?' 하는 생각까지 하게 되었다. 신랑에게 그 이야기를 하니 강하게 머리를 흔들며 그건 아닐 거라 확신한다. 그럼 왜 이리 졸린 걸까?
요즘 급하게 준비하던 일들을 끝내고 나니 갑자기 몸이 풀리기 시작했다.
거기다 며칠 근육통으로 아프면서 운동을 안 했더니 살도 찌고 활동하는 게 더 힘들어졌다.
그래서 특단의 조치로 어제는 하루종일 금식을 하고 오늘아침은 당근을 쪄서 요구르트와 함께 먹었더니 몸이 조금은 가벼워진 느낌이다.
요즘 레이달리오의 '원칙', '스틱', 그리고 '그대들, 어떻게 살 것인가'라는 책을 조금씩 섞어 읽고 있다. 무겁고 진중한 원칙은 일어나자마자, 스틱은 그림을 그리다 잠깐씩, 그대들 어떻게 살 것인가는 가볍게 아이들 놀이터에서 읽고 있다.
'그대들 어떻게 살 것인가'라는 책은 요시노 겐자부로가 1937년에 출간한 청소년 소설이다. 군국주의가 한참일 때 인본주의 정신을 지켜내고자 쓴 글이라 한때 금서였다고 한다. 중학생인 코페르의 본명은 혼다 준이치지만 어느 날 백화점 옥상에서 '무수한 지붕 아래 무수한 사람들이 살고 있다'라는 것을 문득 깨달으며 사람이 분자처럼 서로 연결되어 있다는 것을 느끼게 된다. 코페르의 성장과정에서 어른의 역할을 하고 있는 외삼촌은 그런 혼다에게 천동설을 믿고 있던 시대에 지동설을 주장했던 코페르니쿠스를 이야기하며 '누구나 천동설처럼 자기중심적인 생각을 하지만, 어른이 되면 세상 구성원의 한 사람으로 자신을 바라볼 수 있게 된다.'라고 말한다. 그러면서 어른으로 성장해 가는 조카에게 '코페르'라는 별명을 붙여준다.
책에서 말하는 것처럼 '내가 너와 연결되어 있다'는 것을 느끼는 것은 좀 더 나은 사람이 될 수 있다는 기본 조건이 되지 않을까 싶은 생각이 들었다.
옷수선집 아줌마가 주신 채송화
마흔 가까이에 부산에서 서울로 이주한 우리 신랑은 송파에서 살자고 하니 처음에 살기 싫다고 완강히 거절했었다. 나중에 이유를 물어보니 송파는 강남이라 사람들이 겉멋이 들었을 거란 선입견이 있었다고 한다. 그때 나는 송파에 대해 이렇게 말했었다. 그냥 조용한 도시 속 시골 같은 곳이야. 서른이 되어 처음 정착한 송파는 내게 그런 이미지였다. 한걸음 지나 다음 걸음엔 공원이 꼭 있고 2층 적벽돌집 마당엔 감나무가 한 그루씩 있었다. 감나무 밑엔 다른 꽃들도 많이 피어있어서 걸어 다니는 재미가 쏠쏠했다. 사람들도 순하고 한 곳에서 오랫동안 살아온 사람들이라 이웃이 많이 바뀌지도 않았다.
어제는 오래된 수선집을 지나다 채송화가 피어있는 걸보고 '어떻게 벌써 꽃을 피웠지?' 하는 생각에 놀랍고 예뻐서 멈춰서 보고 있는데 사장님께서 나오시며, "예뻐요?"하고 묻는다.
내가 웃으며 "어떻게 지금 채송화가 피었을까요? 너무 예뻐요."하고 말했더니
"꽃시장에서 사 왔지. 예쁘면 하나 뽑아줄게 가서 심어요."라고 말씀하시며 꽃봉오리 많은 걸로 뽑아주셨다.
괜찮다고 말씀드렸는데도 옥상에 씨 뿌려놓은 게 싹이 많이 나서 주는 거라면서 기어코 손에 쥐어주셨다. 덕분에 우리 집 1층 화단은 빨갛고 하얀 채송화와 미스김 라일락과 다른 봄꽃들이 피어 화사한 봄마당이 되었다.
춘곤증에 시달리는 봄날 중에도 예쁜 꽃을 선뜻 건네는 사람들이 있다. 그렇게 함께 마음을 나눌 사람들이 곁에 있다는 것만으로도 우린 충분히 아름다운 시절을 보내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