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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 오는 날의 랩소디

by 이혜연
비 오는 날의 랩소디

도시 농부가 된 후로 하늘의 안색을 살피는 일은 매우 중요한 행사가 되었습니다.

어쩐지 몸이 뻐근했던 아침. 보슬보슬하더니 이내 주룩주룩 비가 내립니다. 토요일은 아이들 축구수업이 있어서 신랑과 함께 잠전초등학교에 갔습니다. 축구부가 있는 잠전초는 비가 오는 날은 강당에서 진행하기 때문에 날씨에 영향을 받지 않고 수업이 가능합니다. 강당은 1층과 2층으로 되어있어서 1층에서 수업을 하는 아이들을 2층에서 한눈에 볼 수 있다는 장점도 있습니다. 6학년 형아들에게도 지지 않고 바짝 붙어 수비도 하고 공을 끝까지 쫓아가 뺏어오는 모습을 보며 아이들이 부쩍 자랐다는 것을 실감할 수 있었습니다. 매일 함께 먹고, 자고, 노는 모습을 보는데도 어느 순간 훌쩍 자라 있는 아이들을 보면 기쁘기도 하고 놀랍기도 하지만 너무 빨리 자라 버려서 아깝기도 한 복잡한 마음이 듭니다.


그렇게 행복하고 아쉬운 시간들을 보내고 아이들과 텃밭으로 향했습니다. 주변 어른들이 거름을 너무 많이 줬다고 걱정을 많이 했었는데 어느 때보다 작물들이 실하게 커가는 모습을 보니 좋았습니다. 다만 씨앗을 너무 거리 없이 뿌려두어서 비를 맞으며 상추와 열무를 옮겨 심었습니다. 다행히 봄비가 하루종일 내려주었기 때문에 다음에 갈 때는 제법 괜찮은 수확을 기대해도 좋을 것 같습니다.


결혼 전에는 비 오는 날은 따뜻한 침대에 누워 커피를 마시며 만화책을 읽는 걸 최고의 호사로 생각했는데 결혼을 하고는 그런 여유를 내기가 어렵습니다. 텃밭에서 돌아와서는 아이들은 바둑을 두러 가고 저는 열무김치와 파김치를 담기 시작했습니다. 브런치 너나들이 작가님의 글에서 김치양념할 때 감자를 갈아 넣는 걸 보고 맛있을 것 같아 오늘은 감자도 갈아 넣었습니다. 김치를 담기 전엔 아이들 간식도 줄 겸 가래떡을 구워 설탕과 시나몬 가루를 뿌려서 상가 사장님께 가져다 드렸더니 너무 좋아하시며 선물로 모기약을 주셔서 두통이나 가져왔습니다.


열무김치 양념할 때 현미밥과 감자, 대추, 직접 담은 멸치액젓을 넣었더니 맛이 깔끔하고 깊이 있는 단맛이 일품이었습니다. 그렇게 김치를 담아놓고는 어제부터 끓이기 시작했던 감자탕을 세입자분들에게 드리려 전화를 했더니 한 집 빼고 모두 지방에 계셔서 모처럼 양껏 몰아서 줬습니다. 그렇게 의자에 한 번 못 앉아보고 비가 오는 봄날이 가고 있습니다. 비록 따뜻하고 아늑한 시간은 아니었지만 도시 농부로서 농작물을 살피고 사람의 마음을 살피는 하루였으니 이 또한 감사하고 행복한 하루였다는 생각이 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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