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나기를 대하는 우리의 자세

즐겼거나 혹은 두려워했거나

by 이혜연
소나기를 대하는 우리의 자세

맑았던 하늘에

잠시 그림자가 드리우나 싶더니

소나기가 내린다


나는 머리를

양손으로 감싸 쥐고

처마 밑으로

숨어들었다


비는 굵어지고

공중에 있던 먼지 비린내도

흩어져 갔다


그사이

아이들은 놀이터에서

신이 났다


빗소리에

웃음소리가 더

경쾌해졌다


비가 두려웠던 건

놀이터에서

나뿐이었다






나는 어렸을 때부터 고소공포증이 있었다. 높은 곳에 올라가서 밑을 보게 되면 다리가 후들거리고 머리가 어지러울 정도로 두려웠다. 그렇게 높은 곳을 두려워하다가 동생과 함께 월악산 등반을 가서 절벽 가운데서 올라가지도 내려가지도 못한 채 엉엉 울어버렸던 적이 있다. 나는 너무 두려웠지만 그 와중에도 내가 한심하고 부끄러웠다. 이후 높은 곳에 대한 스스로의 생각을 조금씩 바꾸기 시작해서 지금은 예전보다 그렇게 두려워하지 않게 됐다.


인간의 두려움은 생존을 위해 필요한 감정이다.

인간은 사자보다 힘이 세지 못 하고 개보다 후각이 약하다. 적이 가까이 다가올 때까지 눈치채지 못하고, 표범보다 빨리 달아나지 못한다. 아마도 약하디 약한 인간을 보호하시려 신은 두려움이란 감정을 주신 게 아닐까,

그런데 감정으로 남아 있어야 할 두려움이 어느샌가는 실체로 존재하게 되는 때가 있다. 감정이었을 때는 하루에 수천 가지 오가는 마음의 단상들 중 하나였다가 한 번 두 번 두려움으로 앞으로 나아가지 못하는 경험들을 하게 되면 발목을 잡는 무거운 돌덩이로 변해버린다. 살면서 실체 없는 두려움에 사로잡혀 포기를 생활화하는 사람들을 많이 봤다. 물론 나도 예외일 순 없을 것이다. 그렇지만 나는 실패하더라도 두려움 때문에 시도도 못하고 포기하고 후회하는 삶을 살고 싶지 않다.


오늘, 아이들과 함께 놀이터에서 놀고 있는데 갑자기 소나기가 쏟아졌다. 나는 후다닥 처마 밑으로 비를 피해 숨었다. 그리고 아이들을 큰 소리로 불렀다. 그랬더니 웬걸.. 아이들은 좋다고 빗속을 뛰어다녔다. 오히려 빗속을 뛰어다니며 더 가볍게, 싱그럽게 웃어댔다.

그 모습을 보고 그냥 놀게 해주고 싶었다.

비가 와서 온 몸이 젖는 게 불편하고 힘든 일일수 있지만 지금보다 더 꼬꼬마였을 때 나도 지금 우리 애들처럼 비가 두렵지 않았다. 오히려 빗속을 뛰어다니면 왠지 해방감과 자유를 느낄 때가 많았다. 그때의 나는 어디 가고 비는 바라만 보는 것으로 여기는 지금의 나만 남아 처마 밑에 숨어들었을까.

그래서 가슴속에서 고개를 드는 걱정과 타인의 시선을 지그시 누른 채 아이들을 그냥 놀게 해 주었다.


인생에서 만나게 될 수많은 두려움 중에 비를 두려워하는 대신 빗속에서도 자유롭게 놀 수 있는 그런 사람으로 성장하길 바랐기 때문이다. 아이들이 빗속에서도 열정적으로 그 시간을 즐기는 사람이 되길 기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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