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를 위한 만찬

그리고 나를 위해서도

by 이혜연
너를 위한 만찬

바다를 품었던

멸치 몇 마리

땅의 힘을 고스란히 담은

애호박, 된장. 두부 넣고

맵쏘롬한 청양고추

어슷 썰어

된장국을 끓인다


푸르디푸른

시금치 살짝 무치고

달디 단

가을 무

생채 만들어


지친 네가 앉은

맞은편에 앉아

오늘 하루는 어땠는지

힘든 일은 없었는지

너의 오늘을 물어

하루를 마무리한다


그렇게 하루가 가고

별일 없이 한 달이 지나

무탈한 일 년을

그리고

또 다른 날들을

우리 함께

마무리하자




그림을 그리고 글을 쓰면서 텔레비전을 볼 시간이 없었다, 모든 사람들이 우영우를 말할 때도 궁금해서 보고 싶었으나 시간이 나질 않았다. 하루 한 장 글그림을 쓰다 보면 가끔 점심도 못 먹고 아이들을 데리러 갈 때도 있고 타 놓은 커피가 차갑게 식을 때까지 입도 못 댈 때도 있다. 그런데 언감생심 티브이 시청이라니.. 그런 건 꿈도 못 꾸는 요즘이다.


그런데 엊그제 우연히 유튜브를 보게 됐다. 미국의 한 법원에서 있었던 일을 보여주는 짧은 영상이었는데 나이 지긋한 판사와 스쿨존 속도위반을 한 96세 할아버지에 관한 이야기였다.

판사는 피고가 스쿨존에서 속도를 위반했음을 주지 시켰다. 하지만 귀가 어두운 96세 할아버지는 본인이 속도를 위반하지 않았다고 말하며 병원을 가려던 중 일어난 일이었다고 했다. 96세면 병원 옆집에서 사셔야 하는 거 아닌가.. 혼자 속으로 생각했다. 삐적 마른 팔과 뼈만 남은 겨울 나뭇가지 같은 그의 손이 미세하게 계속 떨고 있었다. 불안한 운전을 하시는 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을 때 떨리는 목소리로 할아버지가 말씀하셨다. 아들이 암에 걸려서 2주에 한 번씩 아들을 데리고 병원에 다녀와야 한다는 이야기였다.


1분여의 짧은 영상이었다. 96세 아버지와 적어도 70세는 됐을 아픈 아들의 모습이 생생하게 떠올랐다. 아들은 나이가 들어도 부모에겐 세상에 하나뿐인 자식일 것이다. 아버지는 90이 넘어도 아버지였다.


노쇠한 몸에 귀도 어둡고 시속 30km의 속도를 넘지 못하는 운전을 해가며 아픈 아들을 돌보는 아버지를 보며 가슴이 먹먹했다. 아들 둘을 키우며 새삼 부모의 마음을 마음으로 이해하기 시작했다. 때로 왜 그렇게 어리석게 사시느냐고 원망했던 내 말들이 부끄러웠다. 돈을 벌고 집안의 경제력을 채운다는 얄팍한 마음으로 혼자 큰 양 의기양양했고 때론 되바라진 행동들도 했었다. 하지만 아들들이 커가면서 조금씩 나도 어른이 돼가는지 아니면 이젠 두 분 다 돌아가셔서 원망할 자리에 아쉬움과 그리움만 채워놓아서 그런지 그 영상을 보고 한참을 울었다. 내가 70 먹은 자식이어도 늙으신 부모의 손을 빌리고 마음을 아프게 한 게 미안해서 울었을 것 같다. 반대로 90이 넘어 아들이 아픈 모습을 지켜본다는 게 힘들 것 같아 마음이 아팠을 것 같다.


엄마가 돌아가신 후 하루를 마치고 잠자리에 들 때 신랑에게 감사하다는 말을 자주 한다.

부모님이 모두 돌아가시고 세상에 혼자 남은 느낌이었을 때 이 사람이 없었다면 얼마나 쓸쓸했을까를 생각하니 더욱 고맙고 감사한 느낌이다. 덕분에 예쁜 아들 둘과 함께 피카추 노래를 부르고 함께 잠들 수 있는 밤들이 너무 소중하고 감사하게 느껴지는 요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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