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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혜연 Jul 21. 2024

마나님이 왜 토라졌는지 아직도 모른다.


10년 전, 처음 신랑을 만났을 때는 48kg에 마른기침을 수시로 해대는 사람이었습니다. 기침을 하면서 말소리까지 개미만 해서 도대체 무슨 말을 하는지 알아듣기가 쉽지 않아 목소리 큰 저는 이 사람과 결혼하지 말아야지 했었더랍니다. 그런데 인연이란 게 우스워 3개월 만에 결혼을 하고부터는 신랑의 기침을 잡고 살을 찌우기 위해 갖은 노력을 다 했습니다. 신혼 초, 2년 동안 슬로우 쿠커에 겨우살이와 배, 대추와 감초를 24시간 우려내서 1리터 페트병에 넣어두고 매일 마시게 했습니다. 그랬더니 조금씩 잔기침이 줄고 혈색도 맑아지기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살 찌우기. 살 빼는 것보다 체질적으로 살이 붙지 않는 사람을 살찌우는 게 훨씬 더 어렵다는 걸 신랑과 결혼한 후에 알았습니다. 더군다나 물만 마셔도 살이 찌는 체질인 저는 신랑이 남긴 것들을 먹으며  점점 더 나락으로 떨어졌습니다. 아침, 저녁 새 밥을 하고 메뉴도 조석을 다르게 해서 밥상을 차렸지요. 그랬더니 저는 60kg이 훌쩍 넘어버렸고 신랑은 겨우 54Kg에서 멈추어 요즘은 보기 좋게 살이 올랐습니다. 


그렇게 신혼 때부터 정성스럽게 밥을 해 먹였는데 그걸 10년이 넘도록 하니 이제 밥은 제가 차려주지 않으면 아예 못 먹는 사람이 되어버렸습니다. 어제만 해도 둘째 데리고 아이스링크에 가서 스케이트를 가르쳐주고 아이가 먹고 싶다는 햄버거를 사주고 돌아왔더니 입이 댓 발로 나온 신랑이 눈도 안 마주치고 짜증을 내더라고요. 자기랑 첫째 저녁밥은 어떻게 하냐는 토로를 하며 연락도 안 해주고 둘째와 저녁을 먹었다고 화가 나있었습니다. 기도 안 찼지만 꾹 참고 잠을 잤는데 새벽에 일어나 보니 신랑이 침대에서 자지 않고 바닥에서 아이들과 잠자고 있더라고요. 그건 분명 자기가 단단히 토라졌다는 무언의 신호였기에 잠자는 그의 발을 실수인 척 꾹 밟아버릴까 하는 마음까지 들었습니다. 그러다 오늘 도서관에 가서 박완서 선생님의 유작인 <노란 집>을 읽으며 내 맘에 쏙 들어온 문장을 보고 웃음이 터졌습니다. 


"영감님은 마나님이 왜 토라졌는지 아직도 모른다. 알려고도 하지 않는다. 오십여 년을 해로하면서 어찌 좋은 날만 있었겠는가. 툭하면 토라지기도 잘하지만 뒤끝이 없어 언제 그랬더냐 싶게 헤헤거리기도 잘하는 마누라였다. 그래 버릇해서 영감님은 한 번도 마누라가 왜 토라졌는지 그 근본 원인을 캐들어가 적이 없다. 불화가 오래가면 자기만 손해라고 생각해서 얼렁뚱땅 화해를 서둘렀을 뿐이다.


영감님이 알고 있는 화해의 방법은 딱 한 가지. 불문곡직 잠자리에서 마누라를 기쁘게 해주는 거였다. 그는 그 방법밖에 모를 뿐 아니라 그 방법에 자신이 있었기 때문에 부부싸움을 오래 끄는 자식 놈들이 한없이 변변치 못해 보였다. 그러나 이제 내가 그 방법에 자신이 없어진 것이다. 이제부터 어쩔 것인가. 내 꼴이 어쩌다 이리 초라해졌단 말인가."  -박완서 <노란 집>중에서


늙은 부부의 이야기인데 이 문장을 읽으며 아직 젊은 신랑을 떠올리며 마음속으로 벼르고 별렀습니다. 

"좀만 더 나이 들어봐라. 진짜 아무것도 안 해준다. 버릇을 잘 못 들인 탓이 크니 그때까지는 내가 참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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