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정이 예뻤던 대학을 다니던 시절, 삼월은 그야말로 봄 천지였다. 아직 활짝 피지 않은 꽃봉오리들이 봉긋봉긋해지면 두 방망이질하는 가슴을 붙잡고 잠 못 이루던 날들이었다. 초봄엔 아직 어른이 되기엔 앳된 작은 성인들이 벌처럼 꽃주위를 서성였고 덜 여문 꽃들은 괜스레 부끄러워 밝은 햇살 속으로 숨어들곤 했었다. 길을 가다가도, 동아리방에서 함께 장난을 칠 때도, 강의실 밖 커피자판기 앞에서도 서로 곁눈질을 일삼던 그날들이 훌쩍 지나가버렸다. 짝사랑 상대를 보려고 돌아갔던 길, 창가에 앉았다가 우연히 발견하게 된 좋아하는 선배를 눈으로 좇으며 설레었던 날들도 삼월이었다. 하지만 벚꽃이 흐드러지게 피어 함께 손잡고 걸었던 그날들도 결국은 만개한 꽃들이 한참일 때 매섭게 불어닥치는 비바람에 한순간 하얗게 빛나던 벚꽃 잎이 거리로 쏟아져 무심한 발걸음에 짓이겨져 버리고 그때서야 어린 청춘들은 축제가 끝났음을 알아차리곤 했다.
지금은 볕 좋은 날은 놀이터 지킴이로 아이들 뒷모습을 쫒고, 비 오는 날은 꽃잎이 떨어진다는 걱정보다 아이들 우산 챙기기가 더 중요한 엄마가 되었다. 세상에 남자는 새벽녘 서로 꼭 안고 자는 신랑과 동글동글 귀여운 연년생 형제가 전부인 아줌마가 되었지만 모든 게 새롭게 태어나 자신을 단장하는 봄이 되면 두근두근 설레게 된다. 오십이 넘으면, 육십이 되고 칠십이 넘으면 이 설렘이 멈출까 싶지만 가슴속에 사는 스무 살 처녀는 늙지도 않고 계속 꽃을 보면, 봄이 되면 여자가 되어 밤을 설치게 된다. 아름다운 것은 그저 아름다운 것, 산다는 것은 그 아름다움을 계속 느끼며 매번 다시 태어날 수 있다는 것이 축복이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