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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밤

by 이혜연
봄밤

"자연의 인간이란 무엇일까?

무한에 비하면 무(無), 무에 비하면 모든 것, 무와 모든 것 사이의 중간자다.

양 극단에 대한 이해로부터 무한히 멀리 떨어져 있기에,

만물의 끝과 시작은 기약 없이 헤아릴 수 없는 비밀로 숨겨져 있다.

인간은 자신이 생성되어 나온 무도,

자신이 삼켜질 무한도 볼 수 없다."

-블레즈 파스칼



우리 부부는 종종 싸움을 한다. 사소한 말다툼부터 언성을 높이는 비난까지 서슴없다. 하지만 그런 날들은 남편이 팔 베개를 해주며 식어버린 체온을 데워주는 밤이 되면 사소한 것이 되곤 한다. 낮동안의 번잡함도 고집스러운 외로움도, 아주 하찮은 것이 되어 봄 눈 녹듯 녹아내린다. 사람의 온기라는 것이 이렇게 무서운 것임을 깨닫게 된다.


아주 멀리서부터 허기지듯 고독의 길을 걸어왔대도, 너덜 해진 몸으로 상처투성이 걸음을 절뚝이며 마침내 밤 속으로 스며들었다 해도, 폭 안아 감싸 쉬게 해주는 당신의 온도가 잠을 부르고 다시 꿈꾸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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