옛날에 프랑스에서 잠깐 살다가 한국 귀국을 앞둔 시점에 우리 집을 관리하는 에이전시에서 직원이 방문한 적이 있었습니다. 저는 그 사람이 뭐 하는 사람인지 잘 몰랐는데, 그는 키가 큰 곱슬머리 미남이었고 커다란 오토바이를 타고 왔기 때문에 우리 집에 들어올 때 한쪽 옆구리에 헬멧을 끼고 있었습니다. 저는 호기심에 차서 그를 바라보았습니다.
그는 우리 집을 반납할 때에 필요한 절차를 알려주러 온 사람이었습니다. 즉 어디부터 어디까지 청소를 해야 하는지 알려주기 위해 사전점검을 하는 사람이었던 거죠. 그는 구두 위에 일회용 부직포 커버를 씌우고 들어와서는 우리 집을 샅샅이 뒤져보고 이게 문제다 저건 치워라 기름때에 찌든 주방 후드를 지적하고 심지어는 방문에 찍힌 손자국까지 지워놓으라고 말했습니다.
프랑스 집은 내부 모든 면에 흰색 페인트칠이 되어 있었기 때문에 이것저것 지적 사항을 끝도 없이 받아 적어야 했습니다. 나는 창피해서 쥐구멍에 숨고 싶었고, 그가 미남이었기 때문에 더욱 심하게 수치심을 느꼈습니다.
예전 집 발코니에서 내다 본 풍경
그리하여 귀국을 2주 앞두고 일단 아이들과 호텔로 이사를 나간 다음 남편과 나는 대청소를 시작했습니다. 청소기를 몇 번이나 돌리고 매직블록과 수세미를 들고 환기구를 분해하여 비눗물로 씻어냈으며 창틀도 방문도 걸레를 몇 번이나 빨아서 다 문질러 닦았습니다. 이틀이나 정말 열심히 청소를 했습니다.
이만하면 됐겠지 싶을 때마다 사전 점검하던 순간을 생각하면서 여기저기 맹렬하게 북북 문질러댔어요.
넌 내게 모욕감을 줬어. 내가 얼마나 깨끗하게 청소해 놓는지 두고 봐라.
대개의 경우 프랑스를 떠나는 한국인들은 책임감이 강해서 청소를 잘해두고 간다고 합니다. 그렇지만 그냥 한국인 아니고 자존심에 상처를 입은 한국인 아줌마가 얼마나 깨끗하게 청소를 했을지 대략 짐작하시리라 생각합니다.
마침내 전문가와 집주인, 그리고 그 미남이 모여 이사를 나가기 전 최종 점검을 하는 날이 되었습니다. 저는 또 창피한 꼴을 당할까 봐 멀리 도망가 있었습니다. 그런데 저쪽에서 보니 사람들과 대화를 나누는 남편 얼굴이 빨개져서 어색한 미소를 짓고 있는 것이 저번처럼 또 그렇게 흉한 꼴을 당하고 있는 것이 분명했습니다.
저는 스스로 조금 비겁하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남편을 사랑하지 않더라도 저는 의리를 지켜야 한다고 생각했고, 괴롭고 난감한 상황에 남편을 혼자 두고 싶지 않았으므로 그에게 다가가서 다정하게 손을 잡고 ‘아직도 지저분하대? 많이 창피했어?’ 하고 귀에 속삭였죠.
남편은 저를 쳐다보더니 약간 상기된 표정으로 이렇게 말했습니다.
너무 깨끗하다고 엄청 감탄했어. 처음 들어올 때보다 훨씬 더 깨끗하대. 대단하다고 계속 칭찬했어. 그리고 심지어는 저 스페셜리스트는 농담으로 우리더러 한국에 돌아가지 말고 자기랑 같이 일하면 어떻겠냐고 했어.
저는 이게 무슨 소리인가 잠깐 생각했어요.
야, 나이가 50이 다 되어 가는데 그 칭찬을 듣고 기분 좋고 부끄러워서 얼굴이 빨개진 거니? 그럼 수치심 때문이 아니라 칭찬받고 기분 좋아서 그렇게 얼굴이 어색했던 거야?
저는 한심해서 아랫입술을 꽉 깨물었습니다. 그런데 아닌 게 아니라 자꾸만 정말 훌륭하다. 너무 깨끗하다. 당신들은 좋은 세입자였다. 어쩌고 하니까 머리를 긁적긁적하면서 생큐 생큐 하는 제 기분도 나쁘지는 않았습니다.
그리하여 이 일을 계기로 남편과 나는 나중에 은퇴하면 부부가 함께 청소일을 해보면 어떻겠냐는 미래 청사진을 그려보게 된 것입니다. 물론 프랑스 사람들이 그렇~~~게까지 청결을 중시하지는 않는다는 걸 아실 겁니다. 그래서 깨끗하게 청소한다는 기준이 한국과 약간 다를 수도 있겠죠. 그렇지만 염가에 우리 부부는 성실하게 청소를 할 거고 또 음... 매우 정직합니다.
어찌나 정직한지 청소하다가 중간에 신혼 초에 시어머니께서 저를 샘을 내셔서 구박했던 사건부터 시작하여 첫아이 출산할 때 바보 같은 남편 때문에 서러웠던 얘기, 그때 시어머니께서 산후조리를 해주신다고 잡아다가 못살게 굴어서 친정 언니들한테 전화해서 우느라고 아직도 왼쪽 팔꿈치가 성하지 않아서 힘이 들어가지를 않는다는 이야기까지 하면서 청소하는 이틀에 걸쳐 고성이 오가서 남을 하나도 속이는 것이 없이 뱃속까지 털어 보이는 것이 우리 부부 청소단의 특장점이라고 할 만한 것입니다.
그런데 청소는 왜 안 하는 거냐고요?
네, 사설이 너무 길었습니다.
예전에 TV프로그램에서 가수랑 결혼한 요리사에게 집에서 요리를 자주 하시냐고 물어봤더니 아내가 집에서 노래하지 않듯이 자신도 집에서는 요리를 하지 않는다고 했습니다. 이러한 맥락에서 우리는 (멀지 않은 장래에) 청소 전문가 부부이기 때문에 집안 청소를 하지 않게 된 것입니다.
정직한 마음으로 시가 흉을 더 보고 싶지만 아까부터 쏟아지는 졸음을 참으며 자신의 당근을 지키고 있는 달수씨를 괴롭히러 가고 싶기 때문에 이만 줄이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