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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알로 Oct 14. 2023

지난 명절 이야기

요리 시간을 단축하고 싶다면

우리 시어머니께서는 아주 이름난 악당이셨습니다. 최근 몇 년 동안 큰며느리가 도망가서 연락을 끊고 당신이 원인이 되어 두 아들이 심각한 이혼 위기를 겪고 난 후 이제는 며느리들을 괴롭히고 싶다는 욕망을 가까스로 억제하실 수 있게 되셨습니다.     


저는 어머니께 진심 어린 사과를 받았기 때문에 이제 명절에 왕래를 하는 것에 큰 거부감이 없습니다. 남편이랑 이혼할 게 아니면 명절과 생신 정도는 만나야 먼 미래에 시부모님이 돌아가셨을 때 후회할 일이 없을 것 같고 이 편이 아이들 교육에도 낫다고 생각합니다.      


어머니께서는 손이 크시기 때문에 음식을 많이 만드시는데 이제 요리는 큰아들과 함께 만드십니다. 잡채는 한 다라이, 생선 약 스무 마리, 각종 전과 산적을 만드는데 상당히 오랜 시간이 소요되었습니다.      


요리 시간을 줄이고 음식 맛을 살리기 위해서 어머니께서는 프로판 가스통이 부착된 로케트 버너를 구비하셨습니다, 가스불을 켜면 정말 로켓이라도 쏘아 올릴 듯이 대단한 불꽃이 치솟았는데 '저는 명절이 다 뭐냐? 지긋지긋하구나.' 그 비행물체를 타고 우주로 떠나고 싶다는 생각을 잠깐 했습니다.


안전을 위해 이제 바깥에서만 사용하기로 한 로케트 버너


어머니께서는 제게  아무한테나 알려주지 않는 귀한 요리 비법을 전수해주고 싶어 하셨지만 그것은 소림사에서 무림 8대 고수가 되기 위해 거쳐야 하는 수련 못지않게 혹독한 고통을 견뎌야 하는 것이기에 저는 일찌감치 백기를 들고 줄행랑을 쳤고 그래서 아직도 요리를 잘 못합니다.

      

과연 로케트 버너에 잡채에 들어갈 양배추와 각종 채소를 볶아내시는 모습이 장관입니다. 어머니께서 중국요리 장인처럼 거대한 프라이팬을 흔드시며 거침없이 양배추를 볶아 내셨습니다. 차곡차곡 쌓이는 요리들이 거무죽죽합니다.     


불꽃 세기 조절이 안 된다고 큰아들을 부르시는 목소리가 다급합니다. 이러다 뉴스에 나오게 되는 건 아닐까 생전 처음 TV에 출연하게 될지도 모르는데 화장을 좀 해두면 어떨까 잠시 고민했습니다.


남편이 가져온 동그랑땡이 새까매서 역시 로케트 버너가 문제라고 속삭였더니 이건 어머니께서 그냥 버너에다 하신 것이라고 했습니다. 저는 시어머니께서 요리를 하시는 동안 소파에 앉아서 기다리고 가끔 설거지만 도우면 됩니다. 저를 귀애하시기 때문에 저는 시가에 가는 일이 하나도 싫지가 않습니다.      


마침내 세배가 끝나고 싸주시는 음식을 가지고 날 듯이 집으로 돌아왔습니다. 저번 추석에 싸주신 잡채는 열어보니 이미 상해있던 터라 집에 돌아오자마자 버려야 했지만 이번에는 타서 그렇지 당장 버려야 하는 것은 없습니다.


원래 남편은 명절이 끝나면 집안 청소도 열심히 하고 설거지도 도맡아 하고 제 눈치를 엄청 봅니다. 그런데 이번에는 방에 박혀서 꼼짝도 안 하는 겁니다.


감히! 나는 그 방에 가서 문을 벌컥 열었습니다. 명절 내내 장군님의 지휘 아래 요리에 매진한 가련한 주방 보조가 정신없이 코를 골고 있었습니다. 나는 가만히 문을 닫고 나왔습니다.      


어머니께서는 우리 내외를 매우 사랑하신다고 하셨습니다. 프로판 가스통이 부착된 로케트 버너처럼 치명적인 어머니의 사랑 속에서 큰며느리는 이번 명절에도 말로 표현할 수 없는 행복을 느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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