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명절 이야기 2
주방 보조 콘테스트 (며느리가 상상해 본 어머니의 심리)
손꼽아 기다리던 명절이 다가왔습니다. 연휴 기간에 우리 대가족이 먹고 마시고 즐길 요리를 준비해야 합니다. 잡채는 60인분 정도, 생선은 큰 놈으로다 스무 마리, 동그랑땡, 산적, 갈비찜, 식혜, 쥐포전... 종이에 쭉 적었습니다. 재료는 다 준비가 되었는데 혼자 이 많은 음식을 하려니 부담이 됩니다.
큰며느리가 제일 만만한데... 얘는 옛날에도 살림 가르치면서 큰소리를 내고 답답해서 등짝도 좀 때리고 그러면 삐쳐서 혼자 방에 들어가서 울다가 토끼눈이 돼서 나오긴 했었습니다. 그래도 그때는 시간이 지나면 군소리 없이 다시 부엌으로 들어와 내 옆에 다소곳하게 서 있었기 때문에 ‘얘가 뒤끝은 없는 애구나. 좀 부족하긴 해도 그거면 됐다’고 혼잣속으로 생각하며 진심으로 내 딸처럼 대해왔던 것입니다. 그런데 이제는 호통을 치면 얼굴색도 변하지 않고 나를 마주 보며 빙긋 웃습니다. 그리고 몇 년 간 우리 집에 안 옵니다.
저번에 나한테 크게 혼나고 3년간 우리 집에 발길을 끊었으니 이번에 요리하다가 짜증 내고 혼내면 또 빙긋 웃고 우리 영감 상수연(100세 기념 생일잔치)에서나 다시 만나게 될 수도 있습니다. 내가 큰며느리에게 무슨 말만 하려고 하면 미어캣처럼 목을 빼고 우리를 쳐다보는 큰아들도 부담스럽습니다. 얘는 안 되겠습니다.
둘째 며느리를 부엌으로 불렀습니다.
“이것들 좀 기름기 없이 깨끗하게 닦아놓고 콩나물 좀 다듬어 놓거라.”
“왜 저만 시키세요?”
탈락!
둘째 아들을 불렀습니다.
“엄마, 요리 좀 적당히 하세요. 이렇게 해두면 물 생기고 맛이 없다니까 누가 먹는다고 이렇게 하세요? 생선 좀 봐. 상어야? 고래야?”
“저리 가!!!”
그러면 남는 사람은 우리 큰아들뿐입니다. 그건 안 될 말입니다. 맞벌이 핑계로 명절에만 오면서 가족들을 위한 요리가 싫어서 뺀질거리는 멀쩡한 며느리들을 두고 직장에 다니느라 힘든 큰애가 쉬지도 못하게 일을 시킬 수는 없습니다.
‘아들아, 내가 허리가 부서져도 이 어미가 혼자서 해낼 것이야. 우리 가족 대접하는 일이 뭐가 힘들다고 저렇게 게으름을 부리는 못된 며느리들에게 내가 몸소 보여주고 말 테다.’
저번 명절에 이렇게 마음을 먹었다가 정말 허리를 다쳐서 한의원에 한참이나 다녀야 했습니다. 큰아들 신혼 초 명절에 철없이 자기 마누라를 대신해 설거지를 하겠다고 고무장갑을 끼던 아들을 당장 부엌에서 나가라고 준엄하게 꾸짖었던 기억이 납니다. 아무리 힘들어도 지켜야 할 법도가 있고 전통이 있는 것인데 늙고 힘없는 나는 이제 그것도 어려워졌구나 하는 생각에 눈물이 났습니다.
큰아들과 마주 앉아 도란도란 얘기를 하면서 요리를 합니다. 얼마나 재미지고 효율적으로 일이 진행되는지 왜 진작 얘랑 같이 요리를 하지 않았을까 후회가 됩니다.
얼마 전에 명절 음식을 하려고 프로판 가스 로켓 버너를 샀는데 불길이 너무 세서 아들 눈썹이 그을린 것 빼고는 아무런 사고도 없이 즐겁게 요리를 마쳤습니다. 뒷정리를 하면서 보니 중문 안쪽에서 큰며느리가 환기를 시킨다고 방석을 들고 휘두르며 이리 뛰고 저리 뛰고 있더군요. 쟤는 나무늘보처럼 늘 느릿느릿 걷고 빙긋이 웃기만 하는 줄 알았더니 저렇게 빨리 움직일 때가 있네요. 거실이 뿌옇긴 했지만 며느리들 말처럼 스프링클러가 작동할 만큼은 아니었는데 참, 새가슴들이에요.
이번 명절도 이렇게 잘 지나갔습니다. 네에, 그래요. 이렇게 주방보조로 선발된 사람은 제 큰아들입니다. 그 애가 여태까지는 제 딸이자 애인이었는데 이제는 주방보조까지 하게 된 겁니다. 그나저나 그을린 눈썹은 언제 나려나 슬며시 걱정이 되네요. 그딴 거 상관없이 여전히 세상에서 제일 멋진 우리 아들이기는 하지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