잡채 60인분에 들어가기 위해 차례를 기다리고 있는 오뎅, 시금치, 돼지고기, 양배추와 목이버섯 등을 보니 이 명절 요리를 위해 지나치게 많은 자원이 동원되고 있는 잘못된 현실을 어떻게든 바로잡아야 할 것이라는 사명감이 들었습니다.
비록 저는 음식 생산에 투입되지는 않지만 소비에는 일등공신이기 때문에 이런 말을 할 자격이 있습니다. (이건 우리 어머니께서 저에 대해 유일하게 마음에 들어 하시는 점이기도 합니다.) 아이들이나 저나 명절에 이렇게 기름진 음식을 먹어버리면 체중이 증가하고 위도 늘어나서 원래대로 돌아가는데 한참이 걸립니다. 왜 이렇게 소모적인 일을 반복하겠습니까? 다음 명절부터는 적정량의 음식만 만들고 만난 자리에서 먹고 헤어지는 것이 좋겠습니다.
그런데 이렇게 중차대한 일을 추진하기에 저는 너무 존재감이 없습니다. 거의 희미하거든요.
우리 남편이라면 어떨까? 우리 남편은 음... 잠룡이랄까요? 분명히 힘은 있지만 바꾸고자 하는 의지가 없습니다. 웬만하면 어머니께 맞춰드리고 싶어 하죠. 저기요, 잡놈이라고 쓰지 않았고 잠룡이라고 썼습니다. 오해 없기 바랍니다.
그럼 동서와 연합 작전을 펼칩시다. 우선 동서를 불러서 스몰토크를 시도합니다. 역시 자연스럽게 제가 최근에 받은 피부과 시술 이야기가 나왔습니다.
마취 크림을 바른 다음 피부에 주사를 촘촘하게 놓는 거야.
어머, 징그럽다. 정말 끔찍해.
동서는 몸서리를 쳤습니다. 아무리 직설적인 사람이라도 말하고 있는 면전에서 이렇게 반응하는 사람은 드뭅니다. 기분이 이상하더군요.
과연 MZ세대는 달랐습니다. 저는 향기로운 님의 말소리에 귀먹고 꽃다운 님의 얼굴에 눈멀었습니다. 저는 뒷걸음질 쳐서 안방으로 들어왔습니다. 내상을 입은 탓에 곧바로 주화입마에 빠졌고 한참 그 상태로 있다가 녹두전 맛을 보라는 시어머니의 부름을 듣고서야 간신히 깨어날 수 있었습니다.
그럼 역시 삼촌뿐입니다. 우리 삼촌은 어머니께서 중문과 현관에서 프로판 가스통 로케트 버너를 사용하실 때부터 이렇게 종이가 많은데 여기에서 이런 거 쓰다가 큰일 난다고 경악하여 어머니를 만류하고, 거실에서 그걸로 떡국을 끓이실 때는 불같이 화를 냈던 정의의 사도입니다.
저는 삼촌에게 마지막 희망을 걸어보기로 했습니다. 이런 생각을 골똘히 하다가 갈비를 너무 많이 먹어버렸고 한숨을 쉬다가 켄넬 안에 갇힌 강아지 달수씨의 구슬픈 눈과 마주쳤습니다. 어머니께 강아지가 기다리면서 너무 슬퍼하니까 갈비 뼈다귀를 먼저 줘도 되겠냐고 여쭈어 보았습니다.
“우짜고, 강아지를 깜빡 잊고 있었구나. 아이고, 딱해라. 줘야지. 줘야지. 우리 강아지도 줘야지. 갈비를 벌써 다 먹었나? 뼈만 있고 고기가 없어?”
식사가 거의 끝나가고 있었기 때문에 남은 고기가 없었습니다. 마지막 커다란 고기가 삼촌 입으로 들어가던 찰나였습니다. 어머니께서 얼른 뛰어가셔서 삼촌 입에서 갈비를 빼내셨습니다.
“너무 짜니까 물에 헹궈서 줘야겠다.”
어머니께서 깨끗하게 헹군 갈비 뼈다귀와 마지막 살코기를 강아지 접시에 놓아주셨습니다.
이빨 자국이 선명한 갈비의 살코기를 보면서 저는 이 명절 요리 대잔치는 앞으로도 계속될 것이라는 슬픈 예감을 들어 쓸쓸하게 빙긋 웃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