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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알로 Oct 15. 2023

사춘기가 벼슬

변성기 목소리는 너무 귀여우니까요.

둘째가 거실 게임용 컴퓨터 앞에 앉아서 열심히 모니터를 들여다보다가 갑자기 목이 아프다면서 기침을 했습니다.


엄마, 저한테도 변성기가 온 거 아니에요?


뭐? 아니야, 변성기 목소리는 좀 달랐어.


둘째는 뭐든지 좀 수월합니다. 큰아이를 한 번 키워봐서 그런지 마음 졸이거나 어떻게 해야 하나 안달복달하지도 않고 그냥 알아서 하려니 생각합니다. 그런 의미에서 우리는 둘째가 공부를 잘 못 한다는 것도 첫째 때보다는 쉽고 자연스럽게 받아들이고 있습니다.


물론 큰아이 못지않게 쟤도 이상한 놈입니다.


옷을 찾아 입기 귀찮다는 이유로 주말에도 혼자 교복을 입고 다녀서 저를 펄쩍 뛰게 만들고, 강아지를 키우자고 조르면서 식음을 전폐하여 결국 달수씨와 함께 살며 저와 남편이 매일 산책을 다니게 만들었으며, 집에서 나가 횡단보도를 건너면 정문을 통과하게 되는 학교를 꼭 자전거로 다니는데 무슨 이유에서인지 자주 다쳐서 정형외과를 혼자 드나듭니다.


사춘기 달수씨의 반항적인 눈빛


저는 아이들이 자라는 모습을 일기로 적어두는 걸 좋아합니다. 큰아이에게 변성기가 왔을 때 우리는 프랑스에 잠깐 체류 중이었는데 그때 제가 적어두었던 일기를 찾아보았습니다.




우리 큰아이는 내가 다른 사람 앞에서 입을 열면 불안해합니다. 국제학교라 다른 국적의 학부모들도 있는데 영어에 능숙하지 못한 제가 말실수를 하거나 상대방의 말을 못 알아듣거나 혹은 한국 학부모 사이에서 쓸데없는 말을 해서 자기를 망신 주는 일이 생길까 봐 걱정하는 거예요. 그래서 저는 아이가 부끄럽게 생각하는 일이 생기지 않도록 매우 신경 쓰고 있어요.



학교에서 우리 아이를 만났을 때 꼭 지키는 몇 가지 규칙이 있는데


1. 지나치게 반가워하지 않는다. 손을 가볍게 흔들거나 고개를 까딱하면서 눈인사를 한다.( 이건 뭐 홍길동도 아니고 아들을 아들이라 하지 못하는 제 심경을, 사춘기 아이를 둔 부모님들은 아시리라 믿어요.)


2. 급한 용건이 있어도 큰 소리로 아이 이름을 부르지 않는다. 할 말이 있을 때는 아이 옆으로 다가가 교양 있게 낮은 목소리로 속삭이듯이 천천히 말한다.


3. 아이의 사생활에 대한 이야기를 다른 엄마들에게 말하지 않는다.


4. 절대 아이 손을 잡거나 팔짱을 끼면 안 된다.



옆에 서 있던 엄마가 자신의 중학생 아들과 걸어가면서 자연스럽게 팔짱을 꼈다가 갑자기 무언가를 깨달은 듯 깜짝 놀라서 팔을 빼시더군요. 그 엄마의 사정도 저와 별반 다르지 않은 것 같아서 위안을 받았습니다. 동병상련이라더니... 저는  하마터면 그 엄마에게 뚜벅뚜벅 걸어가서 무안해하는 그녀의 팔을 붙잡고 “나랑 낍시다. 그 팔짱!”이라고 말할 뻔했습니다. (요새 제가 로맨스 뭘 좀 읽느라고 푹 빠져서 지내느라 그렇습니다.)


그런 우리 아이에게 변성기가 왔어요. 아이가 어른으로 성장해 가는 모습이 신기하고 대견합니다.


이 시기에는 말을 할 때에 가끔씩 삑! 끽! 꺅! 이런 소리가 나는 거 아시죠? 저는 그런 면이 너무 귀여워서 아이가 뭘 말하기도 전에 웃음을 납니다. 그래서 아이가 진지한 이야기를 할 때에는 갑자기 웃음이 터지는 일이 없도록 아랫입술을 꽉 깨물고 듣습니다. 아이가 심각한 이야기를 하는데 실수로 웃어버리면 그다음에 어떤 일이 벌어질지 상상하기도 싫습니다.


중학교에 다니는 큰아이와 그 친구 둘이서, 학교를 마치고 공원에서 노는 동생들을 한 시간가량 기다려줬던 날이 있어요. 저는 처음에는 큰아이가 먼저 집에 간 줄 알았어요. 큰아이와 친구가 건물의 후미진 구석에서 놀고 있어서 그 모습이 보이지 않았거든요. 그렇지만 금방 아들과 친구가 그곳에 있다는 것을 알 수가 있었는데요...


그 근처에서 끽! 삑! 삑! 끽! 꺅! 이런 소리가 끊임없이 들렸거든요.


이게 무슨 소리야? 저는 두리번거렸어요.


어딘가에서 새들이 싸우고 있는가 보다 싶어 가까이 가보니 둘이 레슬링 같은 몸놀이를 하면서 낄낄 웃고 있었습니다. 서로 밀고 당기면서 킥킥거리고 가끔 비명도 질렀다가 이쪽저쪽으로 도망치기도 하면서 놀고 있었는데 그 모습이 영락없이 유치원생들 같았습니다.


저는 저런 녀석이 나를 창피해한다는 것이 너무 분하고 억울해서 눈물이 날 것 같았습니다만...


금세 기분이 나아졌습니다. 왜냐하면 끽! 삑! 끽! 꺅! 소리는 언제 들어도 너무 웃기고 귀여우니까요. 심지어는 두 명이라 주거니 받거니 그 소리가 끊이지 않아서 기분이 더 빨리 좋아졌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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