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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알로 Oct 18. 2023

며느리 장기자랑

개다리춤도 괜찮아요?!

 얼마 전에는 시가 모임에 다녀왔습니다. 우리는 시아버님 형제분들과 그 그자손들 4대까지 모여서 함께 1박 2일을 먹고 마시며 친목을 돈독히 하는 전통을 10년 가까이 유지하고 있습니다. 돌림병으로 인해 한동안 모임이 뜸했던 것을 몹시 아쉬워하다가 올해 다시 모임이 재개돼 모두들 기쁜 마음으로 연회에 참석하게 된 것입니다.


 시아버지께서는 형제가 많으시고, 모든 분들이 슬하에 딸아들을 여럿 두셨기 때문에 이 모임에는 대단한 인원이 모이고 있습니다. 해가 거듭될수록 며느리들의 이탈이 심해지고 있지만, 우리 동서와 저는 꿋꿋하게 다섯 시간 가까이 차를 달려 모임에 참석하였습니다.


 동서도 모임을 보이콧하지 못한 자기 나름의 사정이 있을 것입니다. 저로 말할 것 같으면 대외적으로 화목한 가정처럼 보이고 싶어 하시는 시어머니의 마음을 읽고 잡놈 (이번에는 잠룡 아니라 잡놈 맞음) 남편이 몇 달 전부터 제 비위를 맞추면서 공을 들였고 마지막에는 사비를 털어 100만 원을 아르바이트비로 지불하기로 약조하였기 때문에 어머니를 생각하는 그 정성이 갸륵하여 전설의 고향에 나오는 신령스러운 호랑이 흉내를 내어 하루 조신한 며느리 연기를 해주기로 하였던 것입니다.


 다들 오랜만에 모이니까 어르신들께서 서로 얼마나 반가워하셨는지 모릅니다. 저 또한 시간당 4만 원을 생각하면서 얼굴에 쥐가 나도록 미소를 짓고 있었는데 얼마나 지루했는지 모릅니다.


 어린이들 장기자랑이 끝나가는데 사회자님께서 내년부터는 매년 이 모임을 개최할 것이니 빠지지 말고 참석하라고 당부하시면서 다음에는 며느리들의 장기자랑을 봐야겠다는 말씀을 하셨습니다. 그 순간 제 얼굴에서 미소가 사라졌습니다.


집에 도착해서 옷을 팽개치면서 내년부터는 얼마를 줘도 안 간다고 선언하였습니다.


며느리들 장기자랑? 장기자아~랑?


이렇게 하면 되겠네. 저는 너무 화가 나서 큰소리로 '찰랑찰랑'을 부르기 시작했습니다. 두 팔과 엉덩이를 엇갈리게 좌우로 힘차게 흔들고 한쪽 다리를 들고 트위스트를 추면서 관객에게 가까이 갔다가 멀어지면서 긴장감을 주었다가 탱고를 추는 무용수처럼 머리 위로 들어 올린 팔로 몸을 쓸어내리는 관능적인 동작을 하는 동안 화가 좀 풀리고 저도 모르게 흥이 나서 진짜로 춤을 추게 되었습니다.


큰애가 낄낄거리면서 말했습니다.


“장기자랑에서 그렇게 추면 엄마가 1등 상금도 받고 할머니가 다시는 엄마 그 모임에 안 데리고 가실 것 같은데요.”


장기자랑에서 1등 상금도 받고 다시는 모임에 안 갈 수도 있다. 무엇보다 우리 시어머니께서 액세서리처럼 옆에 끼고 다니시는 온화하고 순종적인 며느리의 반전 매력을 세상을 과시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자 갑자기 마음이 설렜습니다. 


혹시 내년 유튜브 쇼츠에서 대가족 친척 모임 며느리 미친 춤사위라는 제목과 함께 격렬하게 개다리춤을 추면서 '찰랑찰랑'을 추는 영상을 보신다면 저인 줄이나 아십시오.


저는 알바비로 받은 100만 원으로 빵 사 먹으러 이만 총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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