또 먹고 싶은 조치원역 시장 호떡
중학교 때 친구를 만나기로 한 날입니다. 그 친구는 세종에 살기 때문에 조치원역까지 기차를 타고 갔습니다. 정부청사 북측에서 내리라고 했습니다. 낯선 버스 정류장 이름을 들으니까 약간 긴장이 됐습니다. 택시를 타고 오라고 했는데 네이버 지도를 살펴보니 버스를 타는 것과 소요시간이 그렇게 차이가 나지 않아 보였습니다. 마침 기차역에 그 정류장에 가는 버스가 들어오고 있어서 그걸 타려고 뛰어가다가 에스컬레이터에서 넘어져서 양쪽 정강이에서 피가 나고 손이 까졌습니다.
그래도 얼굴로 안 넘어져서 다행이다. 하마터면 큰일 날 뻔했네.
그 생각을 하니까 기분이 좋아졌습니다.
저는 상처를 살펴보고 손바닥을 문지르면서 버스를 탔습니다. 버스를 타면서 약속장소를 확인해보니 카페 54로 오라고 적혀 있었습니다. 카페 54를 검색해보니 서울에 있는 음식점이라고 나왔습니다. 카페 오사? 오십사? 피프티포?로 검색해 봤는데도 안 나왔습니다. 고민고민하다가 혹시나 싶어서 카페 45를 검색해보니 북측 정류장에서 멀지 않은 곳에 있는 음식점이라고 나왔습니다. 그러느라고 약속 시간에 좀 늦었습니다. 도착했더니 저와의 시간을 낭비하고 싶지 않았던 친구가 피자와 파스타를 미리 주문해 놓아서 파스타는 떡이 되었고 고르곤졸라 피자는 납작한 대리석이 되어 있었습니다.
음식이 너무 식어서 어쩌지?
친구가 난감한 표정을 지었습니다. 그런 건 아무래도 좋았습니다. 우리는 이야기를 나누면서 차가워진 음식을 맛있게 나누어 먹었습니다. 냅킨으로 입을 닦으면서 집에서 준비해온 작은 선물을 친구에게 주었습니다.
배가 불러서 산책을 하다가 친구네 아이를 보낼 미술 학원에 방문하여 상담을 하고 내부를 둘러보았습니다. 혼자서 학원에 상담을 가면 괜히 주눅이 드는데 둘이 같이 가니까 좋다고 친구가 웃었습니다. 조금밖에 안 걸었는데도 몹시 피곤하더군요. 빽다방에 들러서 음료를 한 잔씩 사서 마셨습니다.
친구가 카운터에 가서 무슨 말을 하더니 두툼한 초콜릿을 하나 가져왔습니다. 발렌타인데이가 멀지 않아서 우리 남편과 아이들에게 줄 두바이 초콜릿을 사려고 했는데 다 팔리고 하나밖에 안 남았다면서 아쉬운 표정을 지었습니다.
하나로 나누어 먹으면 된다고 하면서 가방에 소중하게 선물을 챙겼습니다.
세종에 유명한 호수가 있어. 거기에 가보자.
거기에 들렀다 가려면 기차 시간이 애매한 것 아니야?
아니야. 부지런히 가면 되지. 호수 구경을 하고 가자.
그래, 좋아.
친구가 운전을 하다가 길을 잘못 들어서 우리는 그냥 기차역으로 가게 되었습니다.
차라리 잘됐다. 그냥 안전하게 기차역에 가서 놀자.
그래.
아무래도 친구가 아쉬웠던 모양인지 저만치 가서 유턴을 했습니다.
아니야, 여기까지 왔는데 호수를 보고 가야지.
빽다방의 초콜릿 음료 때문에 혈당이 치솟아 잠이 쏟아져서 제 고개가 자꾸만 떨어졌습니다. 잠결에 쳐다보니 친구는 초행길이라 코를 박고 운전을 하느라 집중한 모습이었습니다.
여기가 고복 저수지야. 근데 기차 시간이 너무 임박했으니까 내리지는 못 하겠다. 그냥 차창 밖으로 봐.
저는 창문으로 열심히 밖을 내다보며 멋있는 호수라고, 아직도 얼음이 얼었다고 감탄을 했습니다.
기차역에 도착하자 친구가 시간이 조금 남았으니 시장 구경을 하자고 했습니다. 시장 안으로 들어서면서 여기에 유명한 호떡집이 있다고 했습니다. 안타깝게도 호떡이 다 팔리고 딱 한 개만 남아 있었습니다. 친구가 그걸 사서 종이컵에 끼워 나에게 쥐어 줬습니다.
나는 먹어 봤으니까 너 먹어.
저는 고개를 크게 끄덕이고 그걸 받아서 혼자 냠냠 먹기 시작했습니다. 그런 나를 뒤로 하고 친구는 앞장서서 시장 안을 빨리빨리 걸어 다녔습니다. 그러다가 양념치킨을 파는 가게로 들어가려고 했습니다.
나 기차 타야 되니까 냄새 나는 건 안 가져갈래.
그래?
뭔가 생각난 듯이 친구는 시장 입구로 뛰다시피 걸어갔습니다.
여기 떡볶이랑 순대가 맛있어.
나 기차 타야 된다고.
분식점으로 들어가려는 친구를 만류했습니다.
그래?
친구를 따라 다니면서 말도 못하게 뜨거운 호떡을 정신없이 먹었습니다. 유명 맛집이라더니 이상할 정도로 맛있었기 때문에 먹는 것을 멈출 수가 없었습니다. 기분이 좋은 말처럼 최대한 윗입술을 벌리고 앞니로 조금씩 깨물어 먹었는데도 마그마처럼 뜨거운 꿀물이 끊임없이 흘러나오면서 입 주변 여기저기에 닿았고 점차 혓바닥과 입술 감각이 둔해졌습니다. 스스로가 미련하게 느껴졌지만 호떡의 마력에 빠져 도저히 헤어날 수가 없었습니다.
시간이 다 돼 기차역으로 이동하다가 빽다방을 발견했습니다. 괜찮다고 말했는데도 친구가 뛰어 들어가서 두바이 초콜릿을 두 개 더 사왔습니다. 묵직한 초콜릿을 가방에 세 개 챙기면서 고맙다고 말했습니다.
기차를 기다리면서 어렸을 때 이야기를 잠깐 했습니다. 가난했던 중학생 시절 이야기는 언제해도 슬프고 재미있습니다.
기차 자리에 앉아서 멀어지는 친구에게 몇 번이나 손을 흔들었습니다. 친구네 아이가 이번에 초등학교에 입학하기 때문에 책가방을 사라고 카톡으로 입학 축하금을 조금 보냈습니다. 친구가 잠깐 대답이 없었습니다. 아마 답례로 소고기를 보내야겠다고 생각하고 있을 것입니다. 그러면 저는 이렇게 비싼 선물용 소고기는 싫다고 거절을 하고, 친구는 그럼 무엇을 주면 받을 거냐고 물어보고, 저는 필요없다고 하고, 그러면 안 된다고 받으라고 하고 이렇게 옥신각신 실랑이를 하게 될 테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