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화 : 두개의 국경,하나의 형제

서류는 없지만 존재는있다.

by 운조



호세는 철조망을 넘을 때 자신의 이름을 속으로 되뇌었다.

“호세 마르티네즈. 나는 잊히지 않을 거야.”

사막의 밤은 매서웠고, 손바닥은 철망에 찢겨 피가 맺혔다.

그는 절대 울지 않았다. 울지 않겠다고 결심한 것이었다.


그의 뒤를 따르던 카를로스는 중간에 멈춰 섰다.

“형... 우리 진짜 가는 거야?”

호세는 대답 대신 카를로스의 손을 잡았다.

‘돌아갈 길은 없다’는 말은 하지 않았다.

그저 손을 쥔 채, 둘은 함께 밤을 걸었다.


해수는 문을 열고 그들을 바라보았다.

아이들의 얼굴엔 먼지와 피로가 가득했고, 말없이 서 있는 모습은 낯설도록 익숙했다.

자신이 이민 첫날 겪었던 불안과도 닮아 있었다.


“너희가...”


해수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카를로스가 물었다.


“혹시 해수... 씨?”


호세는 해수를 처음 보았지만, 오래전 사진으로 익숙했던 얼굴을 알아보았다.

해수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그 순간, 세 남자는 아무 말 없이 서 있었다.

국경을 넘은 자, 기다렸던 자, 그리고 돌아온 자.


그들의 첫 밤은 아무런 언약도 없이 지나갔다.

카를로스는 마리아의 침대에서 잤고, 호세는 거실 바닥에서 담요를 덮었다.

새벽녘, 호세는 잠에서 깨어 벽시계를 바라보았다.

미국 땅에서의 첫날이 밝아오고 있었다.

그는 조용히 속삭였다.


“나는 다시 태어난 거야.”


며칠 뒤, 해수는 아들들에게 식당 일을 돕도록 했다.

호세는 묵묵히 그릇을 닦았고, 카를로스는 주문을 받았다.

주방의 기름 냄새, 고객의 목소리, 카운터의 영어 문장들이 형제에게 하나하나 생소한 무게로 다가왔다.


그러나 진짜 무게는 다른 곳에 있었다.

결혼 증명서.

해수는 두 아들에게 말했다.


“너희가 미국에 있으려면, 뭔가 확실한 게 필요해. 시민권자 아내랑 결혼했으니까 서류만 제대로 만들면 돼.”


호세는 대답하지 않았고, 카를로스는 어깨를 으쓱였다.


호세는 정말로 사랑했다.

로스앤젤레스에서 만난 여자, 루시아는 밝고 강한 여성이었다.

두 사람은 함께 아이를 낳았고, 집도 구했고, 소박한 식탁도 함께 꾸려갔다.

그러나 문제는 단 하나, 결혼신고를 하지 않았다는 점이었다.


“미안해. 내가 미혼모로 남아 있는 게 지금은 더 나아.”

루시아는 말했다.

“정부 보조를 계속 받으려면 그래야 해. 형식적 결혼이라도 불이익이 너무 많아.”


호세는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그는 가족을 이루었지만, 법의 언저리에 있었다.

아이를 목욕시키고 재우는 밤이면, 자신이 보호자가 맞는지 묻곤 했다.


카를로스의 경우는 더 복잡했다.

그는 사랑을 믿지 않았다.

처음부터 서류를 위해 접근했고, 그 사실을 그녀도 알고 있었다.


“그냥... 당신이 외롭지 않아서 좋았어요.”

그녀는 카를로스의 품에 기대어 말했다.

“나는 싱글맘이고, 당신은 서류가 필요하고... 뭐, 서로 도움 되는 거잖아요.”


그러나 시간이 흐르며 둘은 진짜 연인이 되었고, 문제는 복잡해졌다.

카를로스가 결혼을 원했을 때, 그녀는 고개를 저었다.


“결혼은 나에게 손해야. 내가 혼자라는 게, 아이에게는 더 많은 혜택이 되거든.”


그 말은 진심이었다.

카를로스는 조용히 방을 나와 소파에 앉았다.

담배 한 개비를 물고 창밖을 바라보았다.

불빛이 꺼진 도시 위로 경찰 헬리콥터가 회전하고 있었다.

그 소리가 멀어질수록, 그는 다시 외로워졌다.


어느 날, 이민국 공무원이 동네에 들이닥쳤다.

호세는 출근 중 마주쳤고, 카를로스는 뒷문으로 몸을 숨겼다.

그날 밤, 둘은 주방에서 마주 앉아 식탁을 사이에 두고 술을 마셨다.


“우리 여기서 뭐하고 있는 걸까.”

호세가 물었다.


카를로스는 웃었다.


“사는 거지. 서류 없이.”


“가끔은... 내가 가족인지, 세입자인지 모르겠어.”


“형, 우리는 그냥... 그림자잖아. 투명한 사람들.”


그 말에 둘은 웃었지만, 웃음은 금세 사라졌다.


형제는 오늘도 살아간다.

어떤 문서에도 이름을 올릴 수 없지만, 아이를 키우고, 음식을 나르고, 세금도 낸다.

서류는 없지만, 존재는 있다.

그들은 시민권자와 결혼했지만, ‘미혼모 정책’이라는 복지 제도의 이면에 밀려

법적으로 ‘가족’이 되지 못한 가족이다.






“이 이야기는 누군가로부터 전해 들은 경험을 바탕으로 구성한 것으로, 특정 인물이나 사실을 단정하지 않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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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요일 연재